강화/충장공 어재연 장군 동상 제막식 & 가을 감감감...

2014. 12. 17. 21:37문화재를찾아서/인물한국사

-강화도 광성보-

 

지난 11월 11일 강화도 전적지 중 광성보에서 어재연 장군 동상 제막식이 지역 유관민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히 열렸다.

참석한 유관민 모두의 소망 이었던 어재연 충장공의 충의정신을 길이 남겨질 큰 뜻이 이루어저 뿌듯함의 소감을 남기게 되었다.

그러면 어재연의 신미양요.병인양요를 어떠한 용맹과 어떠한 충의 정신을 남겼는가를 보기로 한다.

 

어재연 [ 魚在淵 ]

 

1823(순조 23)∼1871(고종 8). 조선 후기의 무장.

내용본관은 함종(咸從). 자는 성우(性于). 용인(用仁)의 아들이다. 1841년(헌종 7) 무과에 급제, 공충도병마절도사가 되었다. 1866년 프랑스 로즈(Roze,P.G.)함대가 강화도를 침략하였을 때[병인양요] 병사를 이끌고 광성진(廣城鎭)을 수비하였다.

이어 회령부사가 되어 북쪽 변경지방의 비적을 토벌, 치안을 확보하였다. 또한 이 때 장시(場市)를 개설하는 등 변경 무역을 활성화하였다. 1871년 미국 아시아함대의 강화도 내침으로 신미양요가 발생하였다.

6월 1일 손돌목[孫乭項]포격사건이 발생해, 한미간에 최초의 군사충돌이 일어났다. 이를 보고하자 진무중군(鎭撫中軍)에 임명되어 광성보(廣城堡)로 급파되어 600여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광성보에 부임, 미군과 대치하였다.

6월 10일 미군은 강화도상륙작전을 전개, 초지진(草芝鎭)을 점거하였다. 6월 11일 덕진진(德津鎭)을 함락한 미군은, 마지막으로 광성보공략에 나섰다. 이 때 광성보에 수자기(帥字旗)를 게양하고 침공해 오는 미군을 격퇴할 태세를 취하였다.

미군은 광성보에 대한 수륙양면작전을 개시해서, 해상에서는 함포사격, 지상에서는 야포사격으로 초토화작전을 전개하였다. 드디어 광성보로 돌입한 미군과 어재연군 사이에는 육박전으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그는 임전무퇴의 결의로 칼을 손에 잡고 적을 무찔렀고, 대포알 10여 개를 양손에 쥐고 적군에 던져 항전하다가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병조판서지삼군부사(兵曹判書知三軍府事)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충장(忠壯)이다.

 

[어재연 장군의 묘소는 현재 출생지 음성에 안장 되어 있으며 이를 지역민들은 도 문화재 지정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면 사진이 없어져서 아쉬운 장면이 되었습니다.

 

 

 

하부에 이렇게 어재연 장군의 이름이 세겨저 있다.

 

 

 

서로 기념을 남기기 위한 인증샷을 남기고 있다.

 

 

 

동상의 위치는 광성보 입구 삼거리에 로터리를 만들고 그 중심에 서있다.

 

 

 

광성보 입구 주차장에 가을 전경 그 마지막으로 남게 되는 감나무 두거루에는 이렇게 탄성을 자아낼 만한 가치를 지닌체 자랑하고 있다.

가지가 부러지지 않나 나름 걱정스런 탐스러움이 꽉 체워저 있다.

 

 

 

감감감 입니다..........

 

 

 

이런 전형적인 가을 이미지 내 바탕 화면은 어떨까요~~??

 

 

 

 

 

 

 

 

 

 

 

여기까지 왔으니 광성보 가을을 보지 않을수 없겠지요

 

 

 

 

 

 

 

 

 

 

 

 

 

 

 

 

 

 

 

 

 

 

 

 

 

 

 

 

 

 

 

 

 

 

 

11월 11일빼빼로데이인 이날에도 광성보에는 계절을잃은 진달래가 피어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