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행주치마 행주대첩의 권율장군 묘

2014. 5. 29. 13:49문화재를찾아서/인물한국사

장흥 유원지 그리고 누리길을 따라 걷는길

그곳에 권율장군의 묘소가 있습니다.

그리고 행주치마의 대첩은 http://blog.daum.net/wonilcnc/411이곳을 통하여 보실수 있습니다. 

 

 

 

 -권율장군묘 權慄裝軍墓-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석현리 산168-1 소재.이곳은 충장공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명장인 권율(1537~1599)장군의 묘소이다. 장군의 호는 만취당, 본관은 안동이며 조선 중종 31년(1537) 영의정 권철의 아들로 출생 하였다. 장군의 선조 15년(1582)문과에 급제하여 예조정랑 등을 거쳐 55세 때에는 의주 목사로 부임하여 북방 여진족을 방어 했다.

 권율장군묘소 들어가는 입구 전경

 

 

 

 

장흥 누리길 제 3코스 안내도 입니다

 

인진왜란(1592~1598)중에는 전라좌도 도절제사로 임명되어 1천여명의 군사를 모집하여 충청도 금산의 이치(배티고개)에서 전주로 진격하는 1만여명의 애군을 대파하였고, 그 공로로 전라도 순찰사로 승진 하였다. 이어 군사 만명을 인솔하여 수원 독산성에 진을 치고 왜군이 서쪽으로 진출하는것을 막았다. 이듬해 1593년 2월에는 서울을 회복하려고 행주산성으로 진을 옮겨 군관민이 힘을 합하여 2,800명의 군사로서 3만의 왜군을 물리치는 대첩을 올렸다. 이것이 임진왜란 3대 대첩(진주대첩,한산도대첩,행주대첩)중 하나인 행주대첩 이다. 

 

 

대첩후 잔군은 전군을 지휘하는 도원수가 되었으며, 임진왜란이 끝나자 관직에서 물러났으며 그해 세상을 떠났다. 이에 나라에서는 그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영의정으로 관직을 높혔고 선조 37년(1604)에는 선무공신 1등에 영가 부원군으로 봉하고, 충장의 시호를 내렸다.

 종합 안내도

 

 

 

 

 

 

 

묘역입구에 있는 신도비는 기존의 신도비 비문이 마모되어 철종 12년(1861)에 장군의 후손들이 새로 세운 것이다.

   비각

 

 

 신도비

 

 비문내용

 

현재 묘역에는 장군의 묘를 중심으로 좌우로 전 부인 창녕조씨와 후 부인 죽산 박씨가 안장되어 있으며, 묘앞에는 묘비.상석.향로석.동자석 1쌍이 있고 좌우에 망주석과 문인석 1쌍이 있다.

 묘소 전체 전경 입니다

 

 

 

 

 

 

 

 

 

 

 묘소로 올라가는 아동 통로를 따라 올라 갑니다. 통로는 좌우측으로 한개씩 있다.

 

 

 제일 위쪽에는 아버지인 영의정 시 강정공 권철과 정경부인 조씨의 묘.

중간은 동생 의금부사 권순과 정부인 파평윤씨의 합장묘.

아래쪽에 위치한 권율장ㄱ군의 묘 이다.

 

 중앙에는 권율장군의 묘, 좌측으로는 전 부인 창녕조씨. 우측에는 후 부인 죽산 박씨의 묘 입니다

 

 

 문인석과 망주석이 양쪽으로 서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 묘소

 

 

 

행주산성에 진을 치고 3만의 군대를 무찌른 크나큰 승리는 부녀자들의 앞치마에 돌을 날라 싸움에 도움을 준 큰 승전보를 일컬어 "행주치마" 라는 이름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임진왜란 7년간 군대를 총 지휘한 장군우로서 바다의 이순신장군과 더불어 임진왜란의 2대 명장으로 손 꼽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