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6. 3. 21:08ㆍ문화재를찾아서/한국사기행
-창경궁-
창경궁은 성종 14년(1483)에 세조비 정희왕후, 예종비 안순왕후, 덕종비 소혜왕후 세분의 대비를 모시기 위해 옛수강궁터에 창건한 궁이다. 수강궁 이란 1418년에 세종이 상왕으로 물러난 태종의 거처를 위해서 마련한 궁이다.
창경궁은 창덕궁과 연결되어 동궐 이라는 하나의 궁역을 형성 하면서. 독립적인 궁궐의 역할을 함과 동시에 창덕궁의 모자란 주거공간을 보충해 주는 역할을 하였다. 성종떄 창건된 창경궁은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으로 모든 전각이 소실 되었고, 광해군 8년(1616)에 재건되었다. 그러나 인조 2년(1624) 이괄의 난과 순조 30년(1830)대화재로 인하여 내전이 소실 되었다.
화재에서 살아남은 명전전, 명정문, 홍화문은 17세기 조선시대 건축양식을 보여주며, 정전인 명정전은 조선왕궁 법전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이다.
[창경궁 안내도]
[창경궁 사적 제 123호, 홍화문은 보물 제384호]
[창경궁 내부 안내도]
[홍화문]보물384호
창경궁의 정문이다. 임진왜란때 소실 되었으나광해군 8년에 재건하여 오늘에 이른것으로 추정된다. 정면3칸 측면2칸의 중층으로 우진 각지붕이 건물로. 기둥위에는 창방과 평방이 놓이고, 다포계 양식의 공포를 짰는데, 견실한 구조와 공포의 짜임은 조선 초기형식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정면 3칸은 각각 판문을 달고 그 우ㅣ로는 홍살을 하였으며 북쪽에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마련되 있다. 이층은 우물 마루에 연등 천장을 꾸몇다. 홍화문의 좌우로는 궁장이 남북 십자각을 지나 궁역을 형상화 하였다.
[옥천교]보물386호
명당수가 흐르는 어구위에 설치한 다리다.조선왕궁은 모두 명당수 위의 석교를 건너서 정전으로 들어가도록 만들어 졌다.
길이가 9.9m, 폭6.6m와 두개의 홍예로 구성 되어 있다. 홍예가 연결되는 중앙에 귀면이 조각되어 잡귀를 쫓고 있다.
다리 좌우에는 돌난간이 조각되었는데, 난간 가장자리에 법수를 세우고 네개의 법수를 세우고 네개의 연잎 동자주를 세워 5칸을 형성하고, 한장의 돌로만든 풍혈판이 설치되어 돌란대가 얹혀있다. 교상은 장마루 같은 청판돌로 짜여 중앙에는 어도를 한단 높게 만들었다 이 다리는 1483년에 만들어졌다.
[명전전 일원 안내도]
[명전문]보물 제385호
[몀정전] 국보 제226호
국보 제226호, 앞칸 5칸, 옆면 3칸 단층 팔짝 지붕건물 이다. 1484년에 처음 세웠으나 임진왜란때 소실된것을 1616년에 다시지은 조선 중기의 건물 이다.
정면 월대 앞으로는 봉황을 조각한 면석을 놓은 어계가 있고 그 앞으로 어도가 명정문까지 뻗어 있다. 어도의 좌우측에는 문무백관이 조하 때 품계에 맞추어 늘어섰던 품계석이 있다.
[품계석]
[어전]
[문정전 안내도]
[문정전 일원]
임금이 신하들과 회의를 열고 의견을 나누던 창경궁 편전으로 동향인 명정전과 달리 남향 건물이다. 편전 이면서도 왕실의 신주를 모신 혼전으로도 자주 쓰였다. 아버지 영조의 손에 죽임을 당한 사도세자의 비극도 문정전이 혼전으로 쓰이던 것과 관련이 있다. 문정전 일원은 일제 강점기 때 훼손되 1986년에 건물울 다시 세웠으나 서쪽에 있던 담장과 화계 정원은 아직 재건 하지 않았다.
[숭문당 안내도]
[숭문당]
명정전은 후전에 해당하는 건물이다. 숭문당은 임금이 신하들과 경연을 열어 정사와 학문을 토론하던 곳으로 1830년에 다시 세워졌다, 앞쪽에 설치한 누각현 툇마루로 출입 하였고, 영조 임금의 친필 현판이 현재 까지 남아 있다.
[함인정]
문무과거에 급제한 신하들을 접견하던곳으로 1833년에 다시 세웠다. "세상이 임금의 어짊과 의로움에 흠뻑 젖는다"는 건물 이름의 뜻을 상징하듯, 사방이 터진 개방형 건물 이다.
[환경전]
이곳은 창경궁 내전으로 왕이 늘 거처하던 곳이며 중종이 이곳에서 승하했고, 효명세자(익종의 추존)가 승하했을때는 빈궁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경춘전]
이 경춘전은 정조와 헌종이 탄생한 곳이며, 현판은 순조의 어필이다.
[칠층석탑]
[영춘헌,집복헌]
영춘원은 내전건물이며 집복헌은 영춘헌의 서행각으로서 초창 연대는 알수 없다. 집복헌에서는 영조 11년(1735)에 사도세자가 태어났고 정조 14년(1790) 6월에는 순조가 태어났으니 종조는 영춘헌에서 거처 하다가 재위24년(1800) 6월 승하하였다.
이 건물의 동쪽에 궁녀들의 거처로 추정되는 작은 건물들이 많았으나, 지금은 빈터 이다.
[양화당]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파천 하였던 인조가 환궁 하면서 이곳에 거처한 일이 있으며, 고종 15년(1878) 철종비철인왕후가 이곳에서 승하 하였다. 현판은 순조의 어필이다.
[통명전]보물 제 818호
통명전은 창경궁의 연조 공간으로 명정전 서북쪽에 있으며. 왕과 왕비가 생활하던 침전의 중심 건물 이다. 창경궁 창건때 세워졌는데, 인진왜란때 소실 되었다가 재건되고. 다시 이괄의 난과 정조떄 화재를 입었다.
침전 내부의 공간
평상시에도 내부를 공개 하고 있습니다~
[풍기대]
풍기대는 영조 8년(1732)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풍기대 위의 구멍에 깃대를 꽂고 그 깃대에 기를 달아 바람의 방향과 속도를 제던 것으로 방향은 24방향으로 측정 하였다.
[자경전 터]
높은지대에 자리잡아 전망이 좋은 이 터는 대비의 침전인 자경전이 있던 곳이다. 저경전은 177년에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위해 앞쪽으로 멀리 아버지 사도세자의 사당인 경모궁을 향하도록 지었으며, 뒤편에는 아름다운 계단식 후원이 있었다.
"한중록"의 산실이기도 한 이 건물은 19세기 후반에 철거 되었다. 그 후 일제 강점기에는 근대적 왕실 도서관인 장서각이 들어섰다가 1992년에 철거 되었다.
[창경궁 사계]
국보와 보물 등록문화재가 있는 조선의 왕궁을 관람한 소감은 가슴을 저린 사연도 많았지만 후대의 지금에도 역사를 되집어 보는 시간 참 소중한 시간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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