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충의정신과 구국위업을 선양하는 현충사

2014. 5. 22. 22:47문화재를찾아서/한국사기행

-현충사顯忠祠-

사적 제155호

현충사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정신과 위업을 선양하기 위한 곳이다. 1706년(숫종 32)에 아산 지역의 유생들이 조정에 청하여 허락을 받아 세운 사당이며, 1707년 숙종 임금이 현충사 라는 현판을 내렸다. 그러나 현충사는 1868년(고종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헐리게 되었다. 일제간점기 때인 1931년 충무공 종가의 집안이 어려워져 충무공의 묘소와 위토가 은행 경매로 넘어갈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 소식이 "동아일보"에 보도되면서 전국 각지에서 이를 지키기 위한 성금이 모여.  그 성금으로 묘소와 위토를 되찾고. 1932년 다시 현충사를 세우게 되었다. 해방후 1960~70년대 현충사 성역화사업을  통해 이순신 장군의 위업과 정신을 널리 선양하고 있으며. 충무공의 탄신일인 4월 28일을 국가 기념일로 지정하여 해마다 다례행사를 개최하고 있다고 합니다.

 

 

5월에 탐방한 현충사는 온통 소풍의 날을 보내고 있는 시민들의 행복을 영위하는 장소로 탈바꿈한 자태에는 어린이들의 호국정신을 함양하고 구국의 정신을 기릴수 있는 기회의 날인듯 하기고 했습니다.

맑고 푸른 하을의 햇쌀은 모든이들의 해맑은 웃음으로 열어가는 일싱 이었 겠지만 각자의 가슴속 깊은 마음에는 장군의 신화를 배울수 있었던 기회로 여겨져 보이기도 합니다. 

 

 

한낮은 이미 뜨거운 여름을 연상케 하니 나무 그늘의 요충지는 사람들로 붐비며 더위를 피하기도 하면서 도시락으로 행복의 식사를 하는 가족의 아름다운 울타리를 볼수도 있는 명승지 였습니다,

이제 고궁이나 세계유산 등 에도 가족역사 문화유산 탐방기를 통한 멋진 공부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는 일상 다반사가 되어 가고 있더군요.

공원의 기분을 즐기는 모습들 

아이들이 좋아라 뛰어놀고 있는 아름다운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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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어가는 녹음은 여름을 대비 하는듯 합니다 

현충사 외부담장길 

정문을 통과한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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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안내판 

현충사를 알리는 입 간판 

내부 안내판 무료입장이라는 포스터가 보입니다 


 

 

 

 

충무문을 통과히여 입문을 하게 됩니다.

충무문의 좌,우측과 기념관의 전경 입니다.

 


 

 

 

정려를 바라 봅니다

정려 뒷 쪼으로는 연못이 있으며 중앙부 쪽에는 오작교가 설치 되어 있습니다

우측의 연못에는 중앙부에 우뚝솟은 톨탑위에 각종 조경수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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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측의 연못 전경 비람이 불고 있으나 신기하게도 조용하며 반영이 나타나고 있었어요

반영 

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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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작교 정식명칭이 아님 

우측의 연못 

반영 

발길은  이면공 묘소로 옴겨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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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도 소나무 군락은 조선의 기세를 보여주고 있읍니다 

잘 관리된 조경수들 

잘 관리된 나무들 가을이라면 더욱 멋질것같은 생각이 드는군요 


 

 

이면공은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어머님을 모시고 고향집에 있다가 마을 안 에서 분탕질하고있는 왜적과 싸우다 전사하니 그때 나이 21세였다. 층무공은 아들의 슬픈 소식을 듣던 그날의 일기에 이같이 적으셨다. 내가죽고 네가 사는것이 옳은 이친데. 네가죽고 내가 살다니 남달리 영특함으로 하늘이 이 세상에 머물러 있게 하지 않는 것이냐? 슬프다 내 아들아 나를 버리고 어디 갔느냐? 

이면공 묘소는?

충무공의 세째 아들 이면공은 1577년 아산에서 출생하고 활 쏘기를 잘 하므로 충무공이 그지없이 사랑하던 아들 이었다. 

 

 

 


 충무공 고택옆에 자리한 이 두 그루 은행나무는 너이가 500살이 넘은 것이다. 일찍이 이충무공이 집에 장가를 들고, 이곳 활터에서 말을 달리며 무예를 연마하던 모습 그리고 장군께서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후 운구가 이집 앞을 지나 장지로가는 모습까지 지켜 보았을 것이다. 가을이 되면 노란 은행잎이 온나무를 덮어 노란 우산 3개를 펼쳐놓은 듯한 모습으로 보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드 그루 모두 암나무로 해마다 많은 은행이 열린다.

 

 

 

 

 이곳의 묘소는 위에서 부터 이충무공의 3대 4대 10대손의 묘 입니다.

 

이충무공의 묘소는 이곳으로부터 서북쪽 약 9km거리에 있는 아산시 음봉면 삼기리에 있는(어라산)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어찌 본인의 묘소는 멀리 떨어져 있나요

이곳에서 즉시 이충무공의 묘소로 이동하여 자세히 알아 보겠습니다.

 

 


 

활터 입니다 

정면에서 보는 은행나무 


 

 

 

 이집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께서 무과에 급제하기 전부터 사시던 집으로 종손이 대대로 살았으며 일부는 개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집 뒷편에는 충무공의 위폐를 모신 가묘가 있어 매년 기일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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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의 내부 

뒷편의 전경

 대청 뒷편으로는 작약이 피어 있습니다

충무정 가족이 사용했던 우물 

 

 


현충사를 향 합니다 홍살문의 전경 그 뒤로 보이는 현충사

 

 

한계단 한계단을 밟고 올라갑니다

좌우측에는 잘 다듬어진 반송이 서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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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벗나무 

반송 

소나무 터널 

필자가 걷는길 


 

 

 

 현충사 주위들의 풍경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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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무공 신위 

어린아이와 함께 분향하는 가족 

천정은 조선의 왕실과도 흡사하다. 


5월에 탐방한 현충사에 일상을 담아본 긴 시간 이었습니다

 

언제 이만틈의 시간이 흘러갔나라고 생각 할수 있겠지만

보람이 큰 시간의 여정 이었습니다.

 

다음편에는 이곳에 없는 이충무공 묘소를 소개해 올리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