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고불 맹사성 고택

2014. 5. 14. 23:27문화재를찾아서/생가·고택

-아산 맹씨 행단-

맹씨행단은 조선초기 청백리로 유명한 맹사성(1360~1438)의 집안이 살던 곳으로 경내에는 고택과 세덕사, 구괴정, 두 그루의 은행나무가 있다. 고택은 정면 4칸, 측면 3칸의 "工"자형 평면 집으로 중앙 2칸에 커다란 대청을 사이에 두고 왼쪽과 오른쪽에 온돌방을 둔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로 우리나라 대표적인 고 민가 이다.

 

 

고불 맹사성은 누구 인가 ?

고려 수문 전제학 희도의 아들이며 명장 최영의 손녀 사위 이다. 온양 출신으로 1386(우왕 12)년 급제해 춘추관검열이 되었고. 세종 13년에 좌의정이 되어 명재상 으로 이름을 날렸다. 또한 효자로 표창받아 정문이 세워졌고. 지혜롭고 처렴한 성품은 요즘 사람들에게 더욱 귀감이 되고 있다.

맹씨행단 진입로 전경

 

맹씨행단

고택은 원래 최영 장구이 살던 집 이었으나. 조선조 건국이후 사성의 아버지 맹희도가 이곳에 은둔 하여 살면서 후학을 모아 글을 가르쳤으므로 이를 행단이라 하였다.

맹씨행단 기념관 전경

 

 

행단 안내판

 

 

기념관 옆으로 진입로가 형성되어 있다.

 

고불 맹사성 행적

고려말 조선초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신창 자는 자명. 성지. 호는 일명당 세칭 고불이며 시호는 문정공 이다. 고려의 절신 두문동 72현인 맹유를 조부로 같은 두문동 72현의 한 분인 맹희도의 아들이며. 최영 장군의 손서 이다.

조선왕조 건국후 출사 수원판관을 시작으로 예조ㅜ 호조, 공조, 이조 등 4조판서, 예문관대제학, 의정부 찬성사, 우의정, 좌의정을 역임하는 동안 많은 치적을 남겼고. 1435년(예종 17)연로하여 좌의정을 사임한후에도 원로 정승으로 나라의 중대사에 자문을 하였다. 1438(세종 20) 10월 4일 79세에 별세하니 세종이 슬퍼하여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애도하고. 관장으로 장사를 치르고 문정공의 시호를 내렸다.

기념관 전경 이곳은 문을 열지 않으니 전시된 유물은 볼수가 없었다.

 

 

기념관 후면 입니다

 

 

뒷 마당에 낙수가 떨어진 자욱입니다.

 

 

해우소도 마련 되어 있습니다

 

 

맹씨행단 출입문 입니다.

 

 

출입구 앞의 정원 입니다.

 

 

고택의 정면 전경 입니다.

 

 

외곽 울타리는 2중 돌담으로 쌓여져 있습니다

 

 

고려시대의 건축물의 특색을 볼수 있었습니다.

집 정면의 문은  옆으로 열기가 일수 지만 이문을 돌짝이

상부에 설치 되어 있으며 문은 위 아래로 열게 되어 있습니다.

 

 

건물 좌측 내부 문은 옆으로 열게 되어 있습니다

 

 

내부 우측의 문 입니다

 

 

대청의 후문 입니다

 

 

방 내부 전경 입니다

 

 

뒷 뜰로 나가는 후문의 전경

 

 

외곽의 울타리는 돌담으로 조성 되어 있구요

 

 

 

 

 

 

 

 

뒷 뜰의 문쪽에서 바라본 고택 입니다

 

 

 

 

세덕사

고려말 이군불사의 고결한 절개를 지키다 순절한 두문동 72현의 한분인 맹유 상서공, 맹희도 동포공과 조선조의 대표적 청백리로 유명한 맹사성 문정공등 신창 맹씨 선조 삼대의 위패를 모신 사우 이다.

세덕사 출입문

 

 

세덕사 전경

 

 

 

 

 

세덕사 정면이며 세덕사는 문이 굳게 잠겨져 이었습니다.

 

 

외부에서 본 세덕사

 

 

고택 경내는 3개소의 출입문이 있습니다

마지막 출입문은 민가를 향하고 있습니다.

 

 

 

 

보호수

이 나무는 1982년 11월 1일 우리도 나무로 지정된 쌍행수(고유번호:8-91)로서 수령은 610여년으로 추정되며 나무의 높이는 35m이고 둘레는 9m로서사적 제109호로 지정된 맹사성 정승의 고택과 함께 자리하고 있다. 이 나무는 세종대왕떄 좌의정으로 봉직하고 청백리로 유명한 고불 맹사성 정승이 1380여년경에 수식한 것으로서 당시 고불은 이 나무의 보호를 위하여 축대를 쌓고 단을 만들었는데 뜻있는 자들과 강학하던 자리라는 뜻으로 이곳을 행단 이라 칭하였다 한다.

한편 이 나무는 2-300여년 전부터근맹아가 원목 옆 사방에서 자라 지금과 같은 거목으로 자라게 된것이며 1987년 원목의 동공내 부폐로 인하여 인공 수피 시술을 받은바 있다.

 

 

 

 

시술의 흔적이 보이고 있습니다

 

 

처은 들어갔던 정문 쪽 입니다.

맹사성의 흔적과 그 유래를 돌아본 마음

문신으로서 근면함과 효자의 생활을 자세히 돌아본

근엄함을 느끼고 돌아선 기분 짠 합니다.

 

 

 

 

 

회화나무 안내

 

 

보호수로 지정된 320년이 지난 회화 나무

 

 

주위의 동네전경 깔끔한 단장이 정겨움이 느껴 지는군요

 

 

고불 맹사성 고택 답사기 역사의 인물과 여기서 등장하는 고려의 명장 최영장군의 거처였던것이 맹씨행단으로 간 사연 손녀 사위였던 맹사성이 이고의 행단이 되었다는것 잘 알고  답사를 마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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