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4. 14. 23:35ㆍ문화재를찾아서/한국사기행
사릉(思陵) 사적 제209호
-조선 제6대 단종의 비 정순왕후능-
정순왕후(1440~1521)는 판돈령부사 여랑 부원군 송현수의 딸로 1454년(단종2) 왕비로 책봉 되었다.
1457년(세조 3) 단종이 숙부 수양대군(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로 유배되자 정순왕후도
궁궐에서 쫓겨나 부인으로 강봉되고 그 후 단종응 영영 만나지 못하였다.
단종이 나이 17세 나이로 죽임을 당한 것을 알게 된 정순왕흐는 매일 정업원(지금의 청룡사) 뒤
산봉우리 동망봉에 올라 영월을 바라보며 슬퍼했다고 한다.
죽을 때까지 단종을 그리워하였다. 하여 능호를 사릉이라 하였으며 82세에 세상을 떠났다.
1698년(숙종24)노산군으로 강봉되었던 단종이 복위되자 정순왕후도 부인에서 왕후로 복위 되었다.
-사릉연혁-
1521년(숙종 16)정순왕후 안장, 대군 부인묘로 조성
1698년(숙종 24)단종이 복위되면서 정순왕후로 복위,사릉으로 높임
사릉 제향일은 매년 5월 20일(양력)
-백성들이 따르고 애도한 왕후의 뒤안길-
한나라의 왕비였던 여인의 한서린 통곡이 백성들의 마음까지 올린 것인가.
정순완후가 산봉우리에 올라 곡을 하면 민초들도 따라 울었고. 생계가 어려운
왕후를 위해 아낙들이 앞장서 채소며 과일을 사리문 안으로 넣어 주었다고 한다.
정순왕후에 대한 이야기는 유독 백성들과 함께하는 것이 많다.
그도 그럴것이 정순왕후는 18세에 궁에서 쫓겨나와 82세로 생을 마감 할 때까지
민가에서 살았다. 민가라고는 하지만 허물어져가는 초막과 다름없는 집. 어쩌면
그녀의 생활도 초막처럼 누추했을지 모름다, 그러나 그녀의 뒤안길은 백성들이
따르고 애도 했으므로 그리 쓸쓸하지만은 않았다. 지금은 서울 곳곳에는 정순왕
후의 이야기가 살아 숨쉬고 있다.
정순왕후의 한많은 세월은 청계천 영도교에서 시작된다. 영영 이별한 다리. 영도교
단종과 정순왕후가 채1년도 함께 살지 못하고 영영 생 이별을 하게된 다리다.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에 유배될때 두 사람은 이 다리에서 이별을 했다.
고 한다. 이제나 저제나 뵈려나. 단종을 그리는 정순왕후는 애틋한 마음이 영도교라
는 이름에 아로새겨져 있다. 그러나 다리를 건너 홀로 민가로 들어갈 적에 정순왕후
는 알았을까. 그것이 단종의 마지막 뒷모습이엇다는것을.........
이윽고 조용했던 초막에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 들어온다.단종이 영월에서 죽임을 당한 것이다.
민초들과 썪여 사는 남루한 삶에도 꺽이지 않았던 정순왕후의 꼿꼿함은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한 많은 여인은 외롭고 억울하게 죽은 남편을 그리워하며. 또 애도하며 매일같이 산봉우리 거북바위
에 올라 단종의 유배지인 동쪽을 향해 구슬피 통곡했다. 그녀의 통곡이 들려오면 마을 연인들도 함께
땅을 치고 가슴을 치며 함께 울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녀가 매일 같이 올라 통곡하던
산 봉우리에 동망봉 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한많은 삶이 그녀로 하여금 쉽게 눈조차 감을 수 없도록 한 것일까. 단종이 죽고도
정순왕후는 64년을 더 살았다. 의지할 자식조차 없는 삶 이었지만 마을 아낙들이
그녀를 살붙이처럼 보살폈다. 때로 음식을 날라 주며 왕후를 보필했다고도 하고
정순왕후를 위해 그녀가 사는 곳 주변에 채소시장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순조때 펴낸[한경자락]을 보면 동대문밖 동묘 서남쪽에 한양에서 가장 큰 채소시장
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독툭한 점은 이 시장은 남자들이 드나들수 없던 금남
구역 이었다는 것이다. 아낙들이 정순왕후를 돕는 것을 조정에서 알까봐 아예 남자
들의 출입을 금자한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 볼 수 있다.
세조가 말년에 정순왕후에게 궁핍을 면할수 있는 집과 식량을 주었지만 정순 왕후는 그것을
고이 받아줄 여인이 아니었다. 생활고가 왕후로서의 자존감을. 쓸쓸히 죽은 남편 억울함과 열여덟에
홀로된 자신을 지을수 없는일. 시녀들이 동냔한 음식으로 살아가는 비참한 삶이었지만 정순왕후는
세조의 도움도 뿌리치고자줏물을 들이는 염색업으로 새계를 이어 나간다.
후세 사람들은 그녀가 염색업을 했던 골짜기를 자줏골이라 불렀다.
왕릉을 한눈으로 볼수 있다.
신도,참도,어도
정자각
비각
능침공간
소나무림으로 우거져 있다.
정자각에서 홍살문을 바라본다.
여기서 부터는 조선왕릉 자연생태 전시관 입니다
아직 조금 부족한듯 금낭화가 곱게 피어나고 있습니다
고비도 탐스럽게 올라 와 있어요.
관계자 분들
요거 잘들 알고 계시겠지요
바로 두릅 입니다
세계문화유산 조선 왕릉은 다음편에는
"광릉" 을 가 보실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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