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국방유적 덕진진 남장포대 덕진돈대

2014. 2. 18. 22:16문화재를찾아서/성·산성·돈대

 으쌰

소치 동계올림픽 여자 3,000m계주 금메달 획득,

끈질긴 승부수를 만들어준 5명의 선수에게 큰 박수를 보내 드립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대~한미국 짝짝짝~~~

 

강화도는 3일간의 총 여행중 마지막 저녁 늦은 시간이 되서야 덕진진에

도착하여 멀리는 조명이 켜지는 시간까지 탐방을 하게된 마지막 여행지 였다.

그 이후 부족했던 초지진과 또 다른 하나의 돈대는 그 다음주 일요일 재방문

체험을 하게된 시간은 총 4일간의 강화 여행 체험의 일상 이었다.

순서가 엇갈리는 포스팅 이었지만 덕진진을 제외 1개소의 소개가 남아 있다.

다음 소개하는 돈대가 마지막 포스팅이 된다.

 

덕진진(德津鎭)

고려시대부터 강화해협을 지키던 요충지이자 강화 12진보 중 하나 이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에 있는 진 이다.

 

사적 제 226호이다.

병자호란 뒤 강화도를 보호하기 위해 12진보를 만들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요충지에 있는 진이다. 덕진포대와 남장포대는 강화해협에서 가장 강력한

포대로 이름이 높았다. 병인양요(1866)때는 양현수가 덕진진을 거쳐 정족

산성으로 들어가 프랑스 군대를 물리칠수 있었다.

신미양요(1871)때는 미국함대와 가장 치열한 포격전이 덕진진에서 벌어졌다.

이때 초지진에 상륙한 미국 군대에 의해 결국 강화도는 점령 당했다.

1976년 이때 무너진 성곽과 돈대(외적의 침입을 사전에 방지하고 적의 동태를

관찰할 목적으로 해안 지역에 흙이나 돌로 쌓은 소규모 방어 시설물), 포대 등을

복원하고 대포도 복원하여 설치 하였다.

현재 덕진진에는 남장 포대를 볼수 있는데 자연 지형을 이용하여 해상에서 적에

노출되지 않은 천연 요새를 확인할수 있다.

 

공조루 후면 성곽에서 보는 전경 입니다.

 

 

덕진진 측면부에서 바라보는 공조루 입니다 

 

 

이동을 했던 탐방로 이었습니다

 

 

 

 

 

정면부에서 보는 공조루 입니다

 

 

 

 

 

공조루 중앙문 천정의 룡 의 그림으로 장식 되어 있습니다

 

 

후면에서 보는 우측면의 성곽 입니다

 

 

좌측면으로 보는 성곽 입니다

 

 

덕진진의 치열했던 전투의 흔적 들 입니다

 

 

남장포대(南障砲臺)

남장포대는 덕진진에 소속된 포대로 설치되어 8개 포대중 하나이다.

대포 10문이 설치되어 있었다. 고종 8년(1871) 신미양요 때 덕진돈대

와 함께 미국 함대와 맹열한 포격전을 전개 하였던 곳이다.

선첨과 시설물은 이때 모두 파괴되었으나 1977년에 다시 복원 하였다.

 

 

바다를 향한 포좌대 모습 입니다.

 

 

대포가 설치된 전경 입니다.

 

 

10문의 대포를 설치 치열하게 싸웠던 포대의 전경 입니다

 

 

 

 

 

덕진돈대

신미양요(1871) 당시 미국함대와 48시간 동안 치열한 포격전이 전개되었던 곳이다.

 

 

타 돈대의 돌로 내부를 쌓은것과는 달리 덕진 돈데는 계단을 제외한

모든 벽체는 나즈막하나 흙과 잔듸로 형성이 되어 있는것이 특징 입니다

 

 

 

 

 

경고비(警告碑)

조선 고종(1876)흥선대원군의 명으로 세워진 비이다

해문방수타국선시물과 라고 음각되어있다/

이는 바다의 관문을 지키고 있으므로 타국의 선박은 통과할수 없다 라는

쇄국의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경고비 우측 하단에 탄흔이 남아 있기도 합니다.

 

 

날은 어둑어둑 저멀리 초지대교와 초지진의 불빛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경고비에서 나오는길의 덕진돈데의 좌측의 성벽 모양 입니다

 

 

돈대의 우측 전경 입니다

 

 

경고비 덕진돈대 남장포대를 지나서 이제 덕진진으로 향하고

모듬 체험이 완료하고 퇴각을 합니다.

 

 

 

 

강화해협 염하강의 최대 격전지 였던 우리 선조의 유적들에

치열했던 전적지의 흔적을 보면서 새로운 마음가짐을 가다듬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