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국방유적 140년이 지난 전흔을 안고 살아 증명하는 초지진의 소나무

2014. 2. 12. 00:00문화재를찾아서/성·산성·돈대

 초지진은 외세의 침입으로 치러진 전쟁이 140년을 지났다.

그러나 그 전흔에 살아남은 소나무가 치열했던 흔적을 간직한체 지금도 생존하요 증명을 하고 있다.

 

 

-초지진-   사적 제 225호

해상으로부터 침입하는 적을 막기 위하여 조선 효종 7년(1656)에 구축한 요새이다.

안산의 초지량에 수군의 만호영이 있었던 것에서 처음 비롯 되었는데 1666년에

초지량영을 이곳으로 옮긴뒤 "진"으로 승격 되었다.

진에는 배 3척척을 비롯하여. 첨사 이하의 군관 11명. 사병 98명. 돈군 18명 등이

배속되고. 초지돈. 장자평돈. 섬암돈의 세군데 돈대를 거느리고 있었다.

병인. 신미양요. 운양호 사건등 근대까지 줄기차게 싸운 격전지이다.

1871년 4월 23일 미국 로저스가 지휘하는 아세아 함대가 1230명의병력으로 침공하여

450명의 육전대가초지진에 상륙하여 덕진. 광성의 제진을 공격 하였다.

이때 군기고. 화약고 등의 군사 시설물이 모두 파괴 되었다.

1875년에는 일본이 조선을 무력으로 개항시키기 위하여 파견한 운양호의 침공은 고종

13년(1876)의 강압적인 강화도 수호조약으로 이어져 일본침략의 문호가 개방 되었다.

그 뒤 허물어져 돈대의 터와 성의 기초만 남아 있었으나 1973년 초지돈을 복원 하였다.

민족의시련의 역사적 현장 이었던 이곳은 호국정신의 교육장이 되도록 성곽을 보수

하였고 조선군이 사용하던 대포가 전시되어 있다. 성축과 홀로남은 노송에는 당시의

포탄자국이 남아 있어 광광객의 눈길을 끌고 있다.

 

 

 

바위의 포탄 흔적 입니다

 

 

지금도 살아남아 포탄의 흔적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해안가 의 성곽 입니다

 

 

초지진 앞으로 세워진 등대의 전경 입니다

 

 

바다건너 김포 대명리의 함상공원 전경 입니다 

 

 

대명포구의 전경이 조망되기도 합니다

 

 

초지돈대의 외곽성벽의 전경 입니다

 

 

안내판 입니다 

 

 

초지진의 설명 입니다 

 

 

초지돈대의 내부로 진입을 시도 합니다

 

 

 

강화도에는 여러 포대와 진. 보에는 홍이포가전시되어 있는데

모조품이 아닌 진품은 초지진의 홍이포 하나뿐이다.

 

 

 

포대를통해보는초지대교의 전경이 보이네요

 

 

다른 방향의 포대에서 보는 초지대교

 

 

망루에서 보는 초지대교

 

 

 

홍이포가 보관된 정자를 보면서 퇴장을 합니다

 

 

 

 

 

출입구를 향하여 걸음을 옮겨 갑니다

 

 

 

지금도 살아 증명하는 포탄의 흔적

호국정신 함양에 많은 도움 되시기를 기원 합니다.

 

방문 하시는 여러분들께 행복을 빌겠습니다

어깨 동무는 오늘 출장을 가게 되었습니다 토요일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