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남한산성 동문 좌익문 左翼門

2012. 4. 8. 12:12문화재를찾아서/성·산성·돈대

남한산성(南漢山城)

 

남한산성의 역사는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한때 백제의 수도 하남 위례성으로 추정 되기도 했던 남한산성은.

백제의 시조 온조왕이 세운 성으로 알려 졌으나.

신라시대에 쌓은 주장성이라는 설도 있다.

조선 시대에 인조와 숙종 때에 각종 시설물을 세우고 증축하여 오늘날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직전인 1907년에 일본군에 의해 다수의 건물이 훼손 되었다,

 

 

동문(좌익문)

동문은 사용 빈도가 많았던 문으로. 성의 남동쪽에 있다.

다른 이름으로는 좌익문 이라 하였다.

행궁을 중심으로 국왕이 남쪽을 바라보며 국정을 살피니.

동문이 좌측이 되므로 좌익문이라 한 것이다.

폭은 3.1m. 높이는4m로서 홍예 기석위에 9개의 홍예돌을 쌓은 홍예식 성문으로.

지면이 성문보다 낮아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안쪽에는 가로 31cm 세로16cm의 철린으로 보강했다.

성문 위의 문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이다.

이 동문은 낮은위치에 축조 되었기 때문에 계단을 쌓고.

그위에 성문을 축조하여 우마차의 통행이 불가하다.

따라서 물자의 수송은 수구문 남쪽에 있는 11암문이 이용되었을것으로 보인다.

 

 

성남에서 광주 방향으로 오르다 간이 주차장에서 산성을 바라봉 전경.

 

 

 

제 11암문에 관련항 설명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11암문 관련근거에는 수구문으로 되어 있지만 외곽에서 바라본 현장의 표지석은 시구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좌익문으로는 물자를 수송할수 없어서 이 시구문을 통하였다는 설명 입니다.

 

 

 

시구문에서 벌어진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구문에서 바라본 좌익문 전경.

 

 

 

시구문 위에서 남쪽 으로보이는 성곽.

 

 

 

도로위에서 바라본(외곽) 좌익문.

 

 

 

남한산성 표지석.

 

 

 

내쪽에서 바라본 좌익문.

 

 

 

좌익문에서 바라본 남쪽방향의 성곽.

이의 역사는 조선시대 인조와 숙종때 시설물을 세우고.

증축하하여 오늘날에 형태를 갖추고 있는 모습.

 

 

 

 

 

 

돌아 오는길에 성남 시가지가 래려다 보이는 간이 주차장에서.

날씨는 계속적으로 시샘 하지만 자연의 섭리를 이겨내고 꿋꿋이 망울을 싸워 이겨 내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