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덕주산성(堤川德周山城) 외성의 동문

2018. 3. 1. 16:11문화재를찾아서/성·산성·돈대



          

제천 덕주산성(堤川德周山城) 외성의 동문


충청북도 시도기념물 제35호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통일신라시대의 산성.


둘레 약 2,000m. 충청북도 기념물 제35호. 현재 유구는 거의 무너졌으나 조선시대에 쌓은 남문·동문·북문 등이 남아 있다. 이 산성은 신라경순왕의 큰딸 덕주공주(德周公主)가 피난하였던 곳이라고 전해 온다.

이 성은 월악산(月岳山)의 산마루와 그 지맥을 둘러싸고 내성과 외성을 갖춘 나성(羅城)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곳은 문경과 충주를 잇는 도로를 차단하는 전략적 요새지이기 때문에 이 성은 차단성(遮斷城)의 기능을 지니고 있다.





대개 성벽은 화강암 자연석을 약간 다듬어 사용하였으며, 성벽의 높이는 약 2m이다. 남문은 169㎝의 반원형의 홍예(虹霓)를 두고 있으며, 바깥문의 높이는 366㎝, 길이 810㎝이다.

문 안쪽에 가로빗장구멍이 바닥으로부터 52㎝ 위쪽에 있고, 문 좌우의 무사석(武砂石 : 네모반듯한 돌로 쌓아올린 축석)은 36∼59×70∼113㎝ 규모인데, 동문의 양식도 이와 비슷하다




자연석으로 학소대와 동문 입구에 잘 조화롭게 연출 되어 있다.



문루에는 덕주루로 표기 되어 있다.






조선 말기 명성황후(明成皇后)가 흥선대원군과의 권력암투에서 패배할 것을 예상하고 은신처를 마련하려고 이곳에 성문을 축조하였다고 하는데, 이것은 이 산성이 고려시대는 물론 조선시대에도 중시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북문은 새터말 민가 가운데 있으며, 성벽과 수구의 흔적은 없어졌다. 내외의 홍예를 갖춘 성문이나 초루(譙樓 : 문루)와 여장(女墻 : 성 위에 낮게 쌓은 담)은 없어졌으며, 홍예문 안쪽은 높이 298㎝, 너비 800.5㎝이고, 무사석은 대개 높이 55∼58㎝, 너비 75∼161㎝ 정도이다.




바깥쪽은 너비 97∼138㎝, 높이 38∼39.5㎝인데 위로 올라갈수록 차차 석재가 작아지도록 쌓았다. 특히, 이곳의 홍예종석(虹霓宗石)의 바깥면 중앙에 태극무늬가 돋을새김되어 있어 주목된다.




성 남쪽에는 덕주사(德周寺) 옛터와 마애불상, 그리고 근처에 미륵사지(彌勒寺址) 등 고려시대의 유적이 있다. 1256년(고종 43) 몽고병이 충주를 공략하고 이곳으로 진격하자 관리들과 노약자들이 이 산성으로 피신하였는데, 갑자기 검은 구름이 몰려들고 강풍이 불며 우레가 울리고 비와 우박이 쏟아지므로 적병들은 신이 돕는 땅이라 하여 달아났다는 이야기가 전한다.[글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