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강화산성 서문(江華山城 西門)

2018. 2. 11. 09:48문화재를찾아서/성·산성·돈대

강화산성 서문(江華山城 西門)


사적 제132호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국화리 883-1


몽고의 침입으로 고려가 강화도로 천도할 당시 축조되었다. 원래 내성·중성·외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1234년에 규모있는 궁궐의 내성으로 축조되었다. 중성과 외성은 그 이후에 축조되었다. 고려시대의 강화 내성에는 고려 궁궐과 관청이 들어서 있었는데, 그 규모나 배치를 모두 송도와 비슷하게 하였다. 1259년 몽고의 요구로 내성이 헐리게 되었고, 외성도 허물었고 1270년)에는 궁궐도 헐렸다. 1627년 정묘호란에 인조 잠시 피난했으며, 1636년 병자호란 때 봉림대군 등이 피난했다. 이후 수차에 걸쳐 강화성을 개축하여 화강암의 석성으로 바꾸고 여장도 설치하여 4개의 성문과 4개의 암문, 남·북·서쪽의 장대와 2개의 수문 등의 시설을 갖추었다.

그리고 서문 근방에 일본의 강압에 의해 강화도조약이 조인되었던 연무당(鍊武堂)터와 석수문이 있다.


강화산성 서문 전



산성 안내



서문의 홍예천정의 하얀수염의 호랑이



서문의 포토존



연무당 옛터에서 본 서문






문루모습



첨화루라 명명되어 있다



서문과 북문으로 향하는 성곽 모습



남장대로 향하는 내부에서 본 성곽






남장대 방향의 외부에서 본 성곽

강화는 외성과 내성이 있다.

지금 보는 이 내성의 아픈 역사를 둘러보는 시간은 침입이 치열했던 그 시간으로 돌아보는 시간이었고.

결론은 지켜냈다. 몰아냈다 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