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교동읍성(喬桐邑城)

2018. 1. 26. 07:51문화재를찾아서/성·산성·돈대

교동읍성(喬桐邑城)


인천광역시 시도기념물 제23호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 읍내리 577


둘레 약 430m. 높이 약 6m.  이 성곽은 강화도 서편의 교동도에 축조된 고을성으로 1629년(인조 7)에 쌓은 것이라 한다.

성을 쌓은 목적은 예로부터 서해안의 방어를 위한 것이었으며 조선시대 후기에는 이 성 안에 삼도수군통어영(三道水軍統禦營)의 본진이 주둔하여 왔다. 원래 이 성에는 세 곳에 문루를 갖춘 성문이 있었는데 동문에는 통삼루(統三樓), 북문에는 공북루(拱北樓), 남문에는 유량루(庾亮樓)란 문루가 있었다고 한다.

1753년(영조 29)에는 당시의 통어사 백동원이 성곽과 여장(女墻)을 고쳐 쌓았고, 1884년(고종 21)에는 통어사 이교복이 남문을 중건하고 또한 문루와 성벽을 수리하였는데 공사를 끝내지 못하였다.

그 뒤 1890년(고종 27)에도 동문과 북문을 고쳐 세웠는데 세월이 흘러 무너졌다고 한다. 특히 남문의 유량루는 1921년의 폭풍으로 무너졌으나 홍예(虹霓) 부분만은 지금까지 남아 있다.

우리나라의 서해안에는 도서와 해안을 끼고 있는 지역에서 외적의 방어를 위해 고을성을 많이 축조하여 왔는데 교동읍성 이외에도 인근의 강화읍성, 충청남도의 해미읍성과 안흥성, 전라북도의 고창읍성, 전남 진도의 남도석성 등을 들 수 있다.[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교동읍성 이해를 돕기 위하여 강화문화관광과를 통한 현재까지의 복원전 모습을 볼수 있다.


뚜껑석도 없어진 모습 

완파된 홍예를 복원한 모습



[사진출처 강화군 문화광광]


삼도수군통어영과 교동도호부 관아가 있던 강화 교동도 읍내리에는 관아 건물은 남아 있지 않고 읍성을 둘러싸고 있던 읍성 석축 일부와 남문 홍예만이 남아 있던것을 홍예복원과 문루 복원까지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모습.



교동 읍네리를 들어서면 이렇게 이정표가 안내를 하고 있다.



남문 정면에서 우측으로 석축이 쫌쫌히 쌓여진 모습



비석이 세워졌던 것으로 보이는 거북 받침석 남문앞에 있다.



남문 정면에서 좌측으로 쌓여진 석축과 동일하나 무너진 모습이 그대로 표출되어 있으며, 성벽의 넓이로 보아서는 다른 용도로 쓰여진 용도가 있을것으로 보인다.



정면 좌측에서 본 문루 복원 진행 모습

사라져가는 우리의 문화유산을 점차적으로 복원을 진행하는 모습에 마음의 안도가 된다.

그 동안 흔적조차도 찾을수 없었던 문화재를 발굴조사를 통한 중요한 자료 수집을 하고 이를 통하여 복원 함으로 우리의 역사를 점차작으로 학술가치를 제대로 알아가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