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국방유적 건평돈대 330여년전의 불랑기를 발굴하다.

2018. 1. 10. 13:37문화재를찾아서/성·산성·돈대

그동안 돈대 탐방을 많이 진행해 왔었다.

탐방 했던곳들은 모두 기존의 모습을 복원을 중점적으로 사진으로 담아 왔으나. 금번 건평돈대는 탐방에는 많은 관심이 표출된 모습에서 큰 감동 이었다.

건평돈대는 현재 반파된 모습 이었지만. 유적발굴의 흔적이 더욱 큰 관심의 대상 이었다.

그 흔적을 문화재청 및 인천광역시 문화재 발굴을 찾아본 결과를 본 기고를 통하여 많은 분들께 관심을 전하고자 한다.

건평돈대를 찾기란 무척이나 힘들게 찾아간것은 여러분들의 관심에 따라 추후 방문을 돕기 위함도 있다.

물론 내비에서도 쉽게 검색은 가능하나 도착후 부터가 문제에 봉착되면서 발갈을 되돌릴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자세한 안내를 하게 되었다.

하부 지도를 보면 빠른 판단을 할 수 있다.

우리 모두가 관심의 대상으로 방문 한다면 돈대 세계문화유산이라는 타이틀의 완성도를 높여갈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아마도 돈대를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준비도 하고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건평돈대(乾坪墩臺)


http://blog.incheon.kr/220997090951(인천광역시 공식블로그 온통인천, 불랑기포 발굴 현장)


인천광역시기념물 제38호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도면 건평리 산39


조선 숙종 5년(1679)에 강화유수 윤이제가 축조한 여러 돈대 중의 하나이다.

이 돈대는 정포보(井浦堡) 소속으로 육조에 올리는 조운의 감시와 국토방위 임무를 겸해서 스행했다.

석모리 앞바다에 면한 절벽 위에 세워져 있는데 가로36m, 세로26m의 장방형 돈대이다.

성 안에는 대포를 올려놓는 포좌 4문이 갖추어져 있고, 돈대 상부에는 여장을 돌린 흔적이 있으나 현재는 없다.


- 인천 건평돈대 발굴 중 실전 사용 추정 불랑기 확인 -


문화재청(청장 나선화)의 허가를 받아 강화군(군수 이상복)과 인천시립박물관(관장 조우성)이 시행한 인천 강화군 양도면 건평돈대(乾坪墩臺,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38호) 발굴조사에서 불랑기(佛狼機)의 포신인 모포(母砲) 1문(門)이 확인됐다.

 돈대(墩臺)는 병자호란 이후 유사시 왕실의 안전을 책임지는 강화도의 방비를 위해 외적의 침입과 움직임을 탐지하고 상륙을 저지할 목적으로 쌓은 조선 후기 대표적 군

시설로, 1679년(숙종 5년) 강화도 해안 요충지에 48개를 쌓았고 이후 6개를 추가로 건설해 총 54개에 이른다.

건평돈대는 당시 쌓은 돈대 가운데 하나로, 조선 중기 문신 이형상(李衡祥, 1653~1733)이 지은 「강도지(江都誌)」에서  강화도의 각 돈대에는 유사시 적을 방어하기 위해 2~4개의 포좌를 설치하고 불랑기를 배치한 것으로 기록이 남아 있는데, 이번 불랑기 발굴을 통해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불랑기는 16세기 유럽에서 전해진 서양식 화포의 일종으로, 포문(砲門)으로 포탄과 화약을 장전하는 전통 화포와 달리 현대식 화포처럼 포 뒤에서 장전을 하는 후장식 화포다. 포신인 모포(母砲)와 포탄과 화약을 장전하는 자포(子砲)로 분리되어 있고, 모포 뒷부분에 자포를 삽입한 뒤 불씨를 점화해 발사하는데, 보통 1개의 모포에 5개의 자포가 한 묶음을 이루면서 빠른 속도로 연사(連射)가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불랑기는 2009년 서울시 신청사부지(군기시 터)에서 출토된 불랑기 자포(子砲) 1점(보물 제861호, 1563년 제작)을 제외하고 출토지가 불분명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이번에 출토된 건평돈대 불랑기는 실전 배치 장소에서 확인되었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다. 또한, 포신(砲身)에 남겨진 명문에 불랑기의 제작 기관, 감독 관리와 장인의 이름까지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1680년(숙종 6년)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고 제조 관청도 확인되어 조선 시대 무기사와 국방 체계를 연구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 명문 내용: 康熙十九年 二月 日 統制使全等江都墩(皇)上佛狼機百十五 重百斤 監鑄軍官折衝 申淸 前推管 崔以厚 前萬戶 姜俊 匠人 千守仁
1680년(숙종 6) 2월 삼도수군통제사 전동흘 등이 강도돈대에서 사용할 불랑기 115문을 만들어 진상하니 무게는 100근이다.(감주군관 절충장군 신청, 전추관 최이후, 전만호 강준, 장인 천수인)

출토된 불랑기와 발굴현장은 26일 오후 2시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도면 건평리 건평돈대에서 공개할 예정이다.

발굴현장 공개에 대한 더 자세한 사항은 인천시립박물관 이희인 학예연구관(032-440-6741) 또는 김성이 학예연구사(032-440-6744)에게 문의하시길 바랍니다. [출처:문화재청]



문화재 발굴전 반파되어있던 건평돈대의 모습[문화재청]

건평돈대에서 출토된 불랑기



건평돈대 발굴조사전 전경



건평돈대 내부



불랑기 노출 모습



무너진 포좌에서 출토된 불랑기 모습



발굴조사 전경



불랑기에 적힌 명문

이상의 사진출처는 문화재청 입니다.




건평돈대 전체전경



해안도로에서 본 돈대 하부의 벼랑



내비검색으로는 해안도로에서 종료. 어디에 있다는거야?

막연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수 있다. 파란색의 진입로 두곳을 참조하면 쉽게 오를수 있다.

필자는 찾을수 없어서 붉은색으로 가시와 덩쿨을 헤집고 도착한 라인을 그렸음을 양지 하시기 바랍니다.



건평돈대에서 해안을 바라본다.

시야에 들어오는 풍경은 대단하다. 돈대가 왜 이 자리를 택했는지도 알수 있다.



오르면서 잠시 쉬면서 바라본 전경. 아~ 근데 돈대가 무너져 있다.



내부는 모르는체 코너부분이 무너져 있는 상태를 유심히 본다.

그나마 남아있는 저 높은 석축은 괜찮을까도 본다.



올라와보니 뜨악~~

양쪽으로 오솔길에는 많은사람들의 흔적이 보인다.

상부 지도에 이길을 표기한곳이다.

올라 와보니 반파 아니 완파로 결정을 해도 된다는 판단이었다.



우선 좌우측의 외부를 먼저 살펴 본다.



먼저 무너져내린 현황을 살펴보고



해변을 향한 내부에서 무너지고



다른곳에서 볼수 없었던 유적발굴 흔적이 눈에 들어온다.

자로잰듯 깍아지는 터파기 실로 가로세로 나뉘어 놓은 흔적들 과연 무엇을 발견 했을까?

바로 상부에 봤던 불랑기 였던것이다.



포좌가 있고 실제로 기록으로만 보아왔던 포 배치 관련 현실로 증명이 된것이었다.



더 많은 흔적을 찾기위한 노력이 고스란히 보인다.

발굴전문인력이 부족하여 실제 발굴조사를 허락마저 받지 못했던 현실 앞에 이제 양성된 문화재 발굴조사단이 확보되어

이렇게 시작을 하였다는 것에 마음 뿌듯함을 느껴 본다.



무너져내린 포좌를 통하여 외부 해안을 바라본다.



적들의 침입감시 및 불랑기로 포격을 할 수 있었던 최적의 요새로 볼수 밖에 없다 라는 표현이 생겨난다.



상부쪽으로는 좌우로 황강암 암반위에 본 건평돈대가 서 있다는것을 증명해주고 있다



건평리 일대 노고산은 화강암으로 유명한 곳이기도하다.

지척에는 화강암 채취를 하였던 크다란 석산도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건평돈대도 보여지는 포좌는 4개소로 보인다



건평돈대를 사진으로 필기로 모두 탐방후 기존 진입로를 통하여 하산하면서 전체 전경을 본다.



문화재길을 따라 하산하는 중 찰칵


2017년 최근에 문화재 발굴현장을 다녀 왔습니다.

실제로 사용되었던 서양식 불랑기기 발굴되고 역사적 가치성을 발견되었다면 얼마나 큰 성과를 발견 했는지. 역사는 살아 움직이는듯 합니다.

이러한 참여가 늘어나고 문화적 가치성에 세계문화유산 등재에도 상당한 호재가 될것이라 생각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