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국방유적 망양돈대

2018. 1. 8. 19:29문화재를찾아서/성·산성·돈대

지난주말 이틀동안 강화도로 발걸음 옮겨간다.

돈대를 찾다보면 무척 어려움도 따른다. 이정표나 내비에도 검색이 안되는곳도 있다.

예상되는곳에는 한번더 시선을 집중하는 버릇도 생겨났다

진입로를 찾지못해 가시덩쿨을 넘어야하는 과정도 있었다. 실제로 보면 반파나 완파된 돈대가 그러하다.

그러나 돈대를 직접체험하지 못한다면 목적을 이룰수 없기 때문에. 흔적을 찾을수 없는곳 이외는 구성요소를 맞추기로 마음 먹고 있다.

망양돈대는 다행히도 접근이 용이한 곳이다. 외포리 선착장에서 아주 가까운 곳이다.

이곳에서 길을 물어보면 금새 안내를 받을수 있는 곳이다.

지금까지 해안을 관측 및 전투를 해야하는 과정의 이름으로 해안요새란 용어를 접목 했었는데. 국방유적으로 변경함을 말씀 드립니다.


망양돈대(望洋墩臺)


인천광역시기념물 제37호

인천광역시 강화군 내가면 외포리680

          

병사들이 돈대 안에서 경계근무를 서며 외적의 척후 활동을 비롯한 각종 수상한 정황을 살피고 대처한다.

적이 침략할 때는 돈대 안에 비치된 무기로 방어전을 펼친다. 1679년(숙종 5) 5월에 완성된 48돈대에 이후 5개 돈대가 추가로 지어졌다.

48돈대는 황해도·강원도·함경도 승군 8,900명과 어영청 소속 어영군 4,262명이 80일 정도 걸려서 쌓았다.

돈대 축조를 기획하고 감독한 이는 병조판서 김석주였고 실무 총괄은 강화유수 윤이제였다.

망양돈대는 1679년(숙종 5)에 쌓은 48돈대 가운데 하나로 건평돈대·삼암돈대·석각돈대와 함께 정포보에 속했다.

방형 구조로 둘레가 130m, 석벽의 높이는 300~340㎝이다. 동쪽으로 외포리 항이 있고 바로 아래 삼별초항몽유허비가 있다.

남쪽은 급경사로 거의 절벽에 가깝다.

망양돈대는 남쪽으로 건평돈대까지 3,200m, 서쪽의 삼암돈대까지 1,300m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으며, 정포보의 관리하에 있었다.

포좌(대포를 설치하는 곳) 4곳, 치첩 40개소가 설치되어 있다.


현재의 지형으로보아 소나무가 밀집해 있지만 석모도와 망양돈대 사이의 해변관측이 용이해보인것으로 판단 할 수 있다.



망양돈대를 오르는 길목이다.

이 지점에는 삼별초 항쟁비가 있기도 하다.



소나무숲을 잠시 오르다 보면 망양돈대가 보인다.



복원된 외형 해안방향



복원전 화강암과 복원후의 화강암이 구별해서 볼수 있다.



정면에서 우측방향의 외벽



상부 치첩 전경(전 기고내용에는 상부 성곽으로 표현)

몸을 숨기고 전투를 할수 있는 방어용 구조물이며 주 출입구 형태는 다른 돈대와는 차이점이 있다.



내부의 출입문이 있었다는 근거로 보인다



내부 형태로는 포좌가 전투방향 2문 양면방양 각1문 조합 4문의 포좌가 있다

상부로는 치첩이 조합 40개소가 설치되어 있다.



좌측의 포좌



포좌 내부모습 탄약을 보관하는곳도 있다.



포좌를 통한 해안(외부)을 볼수있다.



치첨상단 군사들의 싸움을 위한 동선으로 보여진다.



내부 전체전경



치첩 모습 1개의 전투용과 3개의 관측용으로 설치 되어있는 모습으로 보여진다.



주 출입구 좌측면의 외벽 높이는 3.0m정도다.



해안가의 전경

탐방 하면 할수록 늘어나는 숫자의 돈대와 실태를 봄으로 보다 매력을 느끼면서 많은것을 얻어가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