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조선10대 임금, 연산군 유배지

2018. 1. 23. 19:58문화재를찾아서/한국사기행

연산군 유배지

연산군은 재위 12년 동안 무오사화(戊午士禍 1498), 갑자사화(甲子士禍 1504)등 수많은 옥사를 일으켜 많은 사류(士類)를 잔인한 형벌로 희생 시키는 참극을 벌였던 임금 이었다.

교동섬의 화개산 중턱에 자리한 유배지 위리안치(圍籬安置)는 중죄인에 대한 유배형 중의 하나이다.

죄인을 배소에서 달아나 못하게 하기위하여 귀양간 곳의 집둘레에 가시가 많은 탱자나무를 돌리고 그 안에 사람을 가두는 곳이다.


연산군은 1494년 부터 1506년 까지 13년간 재위 조선 10대 임금 이다.

1476년(성종7년) 11월 7일 부왕인 성종과 관봉상시가 윤기견의 딸인 패비윤씨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

7살에 세자로 책봉되어 후계자 수업을 시작해 18살에 창덕궁에서 왕으로 즉위 한다.

1498년(연산군4)무오사화, 1504년 (연산군10)갑자사화, 1506년(연산군12)9월 1일 정현왕후의 아들이자 연산군의 이복동생인 중종(中宗)에게 추대의사를 밝힌뒤, 연산군을 폐위 하겠다는 대비의 윤허를 받아내 진성대군이 왕으로 즉위하고 연산군은 강화도 교동으로 유배되어 두 달 만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연산군의 묘소는 현재 서울 도봉구에 있다.  임금을 즉위한 연산군은 왜 왕릉이 아닌 묘일까?

임금 이었으나 폐위를 당한 임금은 릉의 명칭을 사용못함 그래서 묘로 일컬음,


연산군 묘소http://blog.daum.net/wonilcnc/1256


유배 문화관 모습



주차장이 있는곳에서 이길을 따라 약 200m남짓 걸어 오르면 유배지를 만날수 있다.



연산군 유배지(위리안치) 표지석






유배행로 장면과 위리안치소를 재현한 모습



유배행로를 설명하고 있다.



유배행로 재현



위리안치소 재현



정면에서 본 위리안치



연산군 재현



이 신하들은 무슨 죄일꼬....



각지의 유배장소들을 기록하고 있다.



왕족들의 유배지,교동을 설명하고 있다.



고려의 왕들도 이곳 교동이 유배지 였다는 설명



유배지 문화관 내부



문화관 정면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