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유네스코 세계유산 파주장릉

2018. 1. 28. 08:49문화재를찾아서/한국사기행

 파주장릉 (坡州 長陵 )

사적 제203호(1970.05.26 지정)


조선 16대 왕인 인조(재위 1623∼1649)와 부인 인열왕후(1594∼1635)의 무덤이다.

인조는 광해군 때 인조반정(1623)을 통해 왕위에 올랐으나 이괄의 난(1624), 정묘호란(1627)과 병자호란(1636) 등 시련이 있었고,

백성의 삶이 어려워지자 강원도에 대동법(1623)을 실시하였다.
장릉은 인조가 왕위에 있을 때 정한 파주 북운천리에 있었으나, 뱀과 전갈이 석물 틈에 집을 짓고 있어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왕과 왕비가 합장된 무덤 형태이다. 전통적인 십이지신상이나 구름무늬가 아닌 모란무늬와 연꽃무늬가 새겨진 병풍석이 무덤을 두르고 있다.

중앙에 설치되어 있는 돌로 된 등인 장명등에도 모란무늬와 연꽃무늬가 새겨 있는데 이는 17세기 석물문양의 특징을 보여주는 예이다.


파주장릉은 문화재보수등에 의하여 그동안 개방하지 않았던 곳이었다.

그동안 문화재 연구 및 학술위주의 출입자에 대해서만 사전 출입허가를 받아왔으나.

2016년 6월 27일 부터 일반에 공개 되었다. 현재는 입장료를 받지 않고 있다.

11월 19일 벌써 겨울인양 영하 6도까지 내려간 휴일오후 이곳은 아직도 미개방인줄만 알았는데 지나가는 길어 들러본 결과 개방시기가 한참은 지났다.

그다지 사람들의 흔적이 많지 않은것 같다.

아직 정상적인 시설을 갖추지 못하여 보이기도하고. 곳곳에 문화재 보수의 흔적도 많아 보였다.

그동안 일반에 공개를 목적으로 참여하여신 모든분들의 노고가 고스란히 보였다.


조선완릉 어디를 가봐도 특별함이 없는 구조적으로 되어 있지만 본 장른은 석물에 모란무늬와 연꽃무늬가 있다는 것이다.

오늘 석물의 문양은 볼수가 없었다. 출입금지 펫말을 보고 접근할 수가 없다. 양심은 지키자.

보호가 우선이라고 생각해 본다.


전체 전경



조선왕릉 세계유산 석물이 정문에 설치 되어있다.



정문을 지나 삼거리에서 우측으로는 재실. 좌측으로는 릉 가는길



조선왕릉의 대표적인 소나무 군락과 수령이 오래된 각종 나무가 많은게 특징 이라 할 수 있다.



재실전경



재실 출입문



재실내부 전경



재실은 관람후 릉을 향한다.

초겨울의 날씨와 시기는 속이지 못하는듯 벌써 잎새는 다 떨어지고 보이지 않는다.



발길을 조금 옮기다 보면 바로 금천교가 보인다.

왕릉의 금천을 건너는 다리로서 속세와 성역의 경계역할을 한다고한다



홍살문이 신성한 지역임을 알려준다

홍살문 뒤로 누워있는 소나무가 있다.

재향을 할때마다 소나무가 먼저 인사를 하는것처럼 보여지기도 한다.



홍살문과 정자각



왕릉의 기풍 소나무 군락



판위 : 능에 행차한 왕을위해 마련한 자리 (배위 라고도한다)

향.어로 : 홍살문에서 정자각 까지 이어진 길.

             박석을 깔아 놓았으며 왼쪽의 약간높은길은 제향때 향을들고 가는 길이라 하여 향로라고 한다.

             낮은길은 임금이 다니는 길이라햐여 어로라 한다.



수복방 : 능을 지키는 수복들이 머무르는곳



수라간 : 재를 위하여 음식을 준비 하는곳



정자각 : 재향을 올리는곳.왕의 신주를 이곳에 모신다.






제향 차림과 의식방법



비각 : 비석이나 신도비를 세워둔곳

         신도비는 능 주인의 업적을 기록한 비석이다.



산신석 : 능침 아래쪽 우측에 있다. 산신에게 제사를 지내는곳



예감 (망료위) : 능침 아래쪽 좌측에 있다. 축문을 태우는곳



능침공간이나 올라갈수 없어 직접 확인할수는 없었다.

능을 둘러싼 곡장,능침,석호,석양,망주석,혼유석,상계,문인석,석마,장명등,중계,무인석 등오로 석물이 배치되어있다.




멀리서만 바라봐야하는 능침공간을 세부적으로 보지 못하여 아쉬움이 남는다.

출입금지를 무시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