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사도세자 스승. 운엄 최광벽 사당

2017. 12. 12. 10:33문화재를찾아서/인물한국사

사도세자 스승. 운엄 최광벽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이다.

본관은 전주. 자는 공헌(), 호는 이우정() 또는 운엄(). 부제학·강원감사를 역임한 인재 최현()의 후손이다.

증조부는 최체곤(), 할아버지는 최두추(), 아버지는 증호조참판 최수인()이다.


1754년(영조 30)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고, 1759년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승정원가주서()·세자시강원설서()를 지냈다.

1762년(영조 38) 자신이 직접 학문을 가르친 사도세자가 궤 속에 갇혀 굶어 죽는 참극을 당하자 깊은 충격을 받고 관직에서 떠났다.

1766년(영조 42) 다시 사헌부지평을 제수받고 벼슬길에 나와 사간원정언을 거쳐 1769년 장령()으로 승진한 뒤 다음해 만경현감으로 나갔다.

1782년(정조 6) 돈녕부도정에 발탁되었다.

1784년 공조참의()를 거쳐 1785년에 풍천부사를 지내고,

1789년 가선대부 도총부부총관()·병조참판()을 지냈다.

1791년(정조 15)에 승정원부승지()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아니하고 선조의 산소가 있는 경상남도 고성에 가 있다

그 해에 6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장례는 유림장()으로 하였으며, 왕이 예조좌랑()을 파견하여 치제()케 하고 제문()에 출재() 업적을 칭송 하였다.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출입구 앞에는 산양석이 마주보고 있다.



운엄사와 신도비(가선대부 병조참판 운암최선생신도비)



이우문 과 운엄사






승조문





현존 마을 해평리는 그 후대가 지금도 집성촌으로 유지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