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금오산 야은 길재선생 도선굴

2016. 8. 14. 21:01문화재를찾아서/인물한국사

금오산 도선굴

고려 충신 야은 길재 선생이 대혈사와 이 굴 아래에 소요하며 도학에 전념했던곳.


신라 말 풍수의 대가인 도선이 참선하여 득도한 곳이라 하여 도선굴이라고 하며, 암벽에 뚫려 있는 천연 동굴로 큰 구멍이라는 뜻으로 대혈(大穴)이라 하기도 한다. 최인재의 『일선지(一善誌)』에 근거하면 도선굴이라는 명칭이 사용된 시기는 조선 전기이고, 또 다른 이름인 대혈이라고 불렸던 것은 고려시대로 추측된다. 굴 아래 대혈사지 터, 현재 공원 주차장이나 백운재(白雲齋) 또는 경파정(景坡亭)이 있는 곳을 대혜 또는 다혈이라 부르니 대혈이라는 명칭과 무관하지 않다.

또한 『일선지』에 따르면 “넓이가 16척, 높이가 15척, 깊이가 24척으로, 그 안에 얽어 만든 집[構屋]이 두 칸 있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는 인동(仁同)·개령(開寧)의 수령과 향민 500~600명이 피난하였는데, 당시 바위틈에 쇠못을 박아 칡이나 등 넝쿨로 이동했던 상황이어서 왜군은 범접하지 못했다고 한다. 현재의 통로는 1937년 선산군 구미면에서 개통한 것이다.


금오산정에서 발원하여 북으로 흘러 금오산저수지로 유입하는 계류의 북서쪽 해발고도 약 480m의 사면에 위치한 자연동굴이다. 굴 내부의 길이는 7.2m, 높이 4.5m, 너비 4.8m이다. 주변의 지질적·토양적 특성으로 보아 화강암의 차별 침식의 결과로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도선굴은 금오저수지로 유입하는 북향 하천의 계곡에 위치하여 암석으로 이루어진 능선과 대혜폭포(명금폭포), 대혜담 등 주변 경관과 어우러져 주변 자연 인식의 표시물이 되고 있다. 특히 우리 조상들이 환경적·풍토적 특성에 순응한 인문적 상황이 잘 나타나 있는 지형지물로서, 일화와 연계한 교육의 장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굴 내부에서...






차마고도와 같은 진입로에서 반겨주는 다람쥐












남무 뿌리를 타고 계속해서 안내를 해주고 있는 다람쥐






좁고 높은 바위길을 타고 올라야 한다.



이 쇠말뚝은 일제시디때 피난을 위하여 박았다는 것이다.



차마고도와 같은 이 좁은길을 통하여 많은 관광객들이 드나들고 있다는 것에 감동 입니다~



오르다 내려다 보는 금오산 주차장 쪽을 바라보는 전경 입니다~



바위에 발자욱으로 윤기가 상당한 모습도 볼수 있다.



어때요 청년들도 바위쪽으로 기대어 걸어가는 모습. 조금은 위험해 보이기도 한다.

아래로 낭떠러지는 족히 10여M는 되어 보인다.


케이블카도 눈에 들어 온다.



바로 아래 낭떠러지 밑에 있는 해운사도 보인다.



도선굴 바로 우측의 암벽이다.



드디어 도선굴 앞에 도착을 합니다



굴 내부는 상당히 넓다.

누군가의 촛불을 밝히고 기도를 했던 흔적 이 보인다.


















도선굴에서 내려다보이는 구미시내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