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후삼국의 격전장.충절의 표상 신숭겸 장군 유적지

2017. 12. 1. 14:03문화재를찾아서/인물한국사

신승겸 장군 유적지

대구광역시 기념물 제1호

고려태사 개국공신이며 평산신씨의 시조인 장절공 신숭겸 장군은 초명이 능산이며. 신라말에 전라도 곡성현에서 탄생 하였다.

신숭겸 장군은 태어나면서 부터 기골이 장대하고 천성이 용맹스러웠으며. 활쏘는 재주와 무예가 뛰어나 장수다운 자질을 보였다.

장군은 서기 918년 6월에 홍유. 배현경.복지겸 등과 논의하여 폭군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을 받들어 고려를 개국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서기 927년 가을에 왕건과 함께 신라를 치고 돌아가던 후백제 견훤을 팔공산에서 맞아 싸웠으나 후백제군에 포위되어 위기를 맞았다.

이때에 장군은 절대위기에 처한 완건을 숨기고 자신이 왕을 가장해 싸우다 장열히 전사하여 후세에 충의와 절개의 사표가 되었다.


신숭겸 장군의 묘지는 춘천에 있다.

http://blog.daum.net/wonilcnc/971


신승겸 장군의 동상 동화사가는 삼거리에 우뚝 서있다.



신숭겸 장군 유적지

정문 양측에 해태상이 서있다.

들어서니 우측으로 표충단을 향하는 소문이 있다.

홍살문 방향으로는 장군의 활쏘는 동상이 서있다.



홍살문이 상절당으로 향하는 입구에 서있다.

우측사진은 표충단 들어오는 출입구 이다.

하부사진은 현재의 관람 할 수 있는 출입구 전경.



표충단과 순절지지비와 비각

영화대



상절당 출입문



보호수:배롱나무 수령400년 표충단안에 있으며 장군의 죽음을 애도하는 뜻에서 심어 장군의 우국충정을 기림

보호수:팽나무 수령400년(일명 태조왕건나무라 하고있다) 후삼국을 통일한 왕건을 기리기 위해 이름지었슴



표충재.서재.동재 출입문과 4개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표충사와 매판단

뒤의 산 이름이 왕산이다.

표충사는 선조 40년(1607)신숭겸 장군의 외후손인 경상도 관찰사 유영순이 영남에 사는 공의 후손들과 협력하여 예 지묘사 터에 세웠다.

그 후 사우가 퇴락하자 현종11년(1670)에 건물을 다시짓고 동년 8월에 영정을 봉안 하였으며. 현종 13년(1672)에 표충사라 사액 되었다.

숙종 2년(1676)에 공의 후손인 신길원 공을 함께 배향하였으나. 고종 8년(1871)에 훼철되고 말았다.

그 후 1988년에 후손들이 뜻을모아 사당을 중건하고 1993년에 장군의 영정과 신위를 모셨다.5이후 매년 한식에 향사를 받들고 있다.


우측하부사진은 매판단 이다.

1871년(고종8년) 서원철폐령 때 훼철된 표충사 현판이 묻혀있다.



비각내에는 충열비가 있다.

좌측하부사진 상절당



신숭겸 장군에게서 배우는 학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