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강화나들길 가릉

2015. 9. 24. 10:51문화재를찾아서/한국사기행

  • 강화 가능(嘉陵)
  • 분류 : 문화재
  • 문화재 구분 : 국가>사적
  • 지정번호 : 370
  • 소재지 : (23057)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도면 강화남로633번길 16 (능내리)
  • 고려 제24대 원종의 비 순경태후 김씨(順敬太后 金氏)의 무덤이다. 순경태후는 최씨 무인집권자 최우의 사위인 김약선의 딸로서 1235년(고종 22) 원종이 태자가 되자 태자비인 경목현비가 되었으며, 다음해에 충렬왕을 낳고 사망하였다. 1262년(원종 3) 정순왕후로 추대되고 아들인 충렬왕이 즉위(1274)하여 순경태후로 높여졌다. 가릉은 강화에 있는 왕릉과는 달리 지상식 석실 구조를 갖추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현재 석실의 전면에는 유리벽을 설치하여 내부를 볼 수 있도록 되어있다. 일반적으로 봉분 뒤에는 반달 모양으로 두둑하게 토성(土城)을 둘러쌓거나 돌담을 쌓은 곡장이 있으나 가릉에는 사성(莎城), 곡장(曲墻)이 없이 약간 경사진 평지에 봉분을 쌓아 올린 형태이다. 묘역은 3단의 장대석단을 설치한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 왕릉의 형태를 갖추었음을 알 수 있다. 봉분이 붕괴되고 석조물은 파괴된 채 폐허가 되었던 것을 1974년 보수하였고, 2004년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한 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봉분 주변에는 현재 한 쌍의 석수가 있고 봉분 앞에는 석인상 한 쌍이 남아 있을 뿐 석물들이 파괴 또는 유실되어 당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없다. [출처:강화군]

     

    가릉 가는길 고개넘어넘어 5km가 넘는길을 출발 합니다.

    숨은 차오르지만 걷는길은 알밤 한톨이 모든 힘듬을 풀어 주기도 합니다.

    가을길은 언제 어디서나 마음의 풍요를 얻기도  합니다.

     

    가릉의 전경

     

     

    석릉에서 다시 돌아온 삼거리 이제 가능 가는길로 접어 듭니다.

     

     

    나들길이 많은 사람들의 발자욱이 보이는것 같아요

    이길로 다녀간 인원은 얼마나될까. 밟는길이 경쾌해 지기도 한다.

     

    바스락 바스락길은 발걸음을 재촉 하기도 합니다.

     

     

    고개마루에는 이런 너럭바위 한개가 있네요

    이곳에에서 잠시 앉아 물한모금으로 목을 축입니다.

     

    내려가는 고개마루에는 괘나 골이 깊습니다.

    차근차근 숲사이로 내려비치는 햇쌀을 받으며 멀리 보이진 않지만 방긋방긋 내리막길을 재촉 합니다.

     

    한톨의 밤이 눈에 들어 옮니다. 우와 기분 짱 이겠지요.

     

     

    밤 송이도 누에 들어 옮니다.

    두발로 밟으며 밤을 줏어 호지머니에 골인. 룰루랄라 기분 업되어 갈음은 빨라만 갑니다.

     

    어느새 기능에 도착을 하였답니다.

    오는 중에도 으슥한 숲길에서는 머리기 쫑긋 할때가 많았어요.

    여러분은 꼭 여러명이 함께걷는 즐거움이 되시면 좋겠어요

     

    그리움에 사무친 시한수 잠시 고개를 떨구어 봅니다.

    조선의 단종을 방불케하는 사연 입니다.

     

    제3코스는 여기서 종료 됩니다. 필자도 제3코스에서 종료를 합니다.

    여기서 스템프를 찍는 나들길 종주를 위한분들이 많으시네요.

     

    가릉의 전경

     

     

    고려왕가릉 묘비

     

     

     

     

     

     

    문인석 조선과의 세밀함의 차이가 보이네요

     

     

    릉 후면에 이렇게 동물형상의 석물이 양쪽으로 배치가 되어 있군요

     

     

     

     

     

    가릉 후면에 능내리 석실분 이라고 합니다.

    당연 봐야겠지요.

     

  • 능내리 석실분
  • 분류 : 문화재
  • 문화재 구분 : 인천>기념물
  • 지정번호 : 기념물28호
  • 소재지 : (417-853) 인천 강화군 양도면 능내리 산16-1번지
  • 강화 능내리 석실분은 고려시대의 왕릉급 무덤이다. 무덤 앞 양편에는 망주석으로 추정되는 사각 석주가 남아 있으며, 사각 석주의 3면에는 내용을 알 수 없는 문양이 양각되어 있다. 고려시대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진 이 고분은 과거 도굴로 인하여 석실이 노출되어 있어 보존·정비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됨에 따라 이를 위한 발굴을 2006년 말에서 2007년 초에 이르기까지 실시하게 되었다. 석실 내부는 화강암을 잘 다듬어 축조되었으며, 봉분구조물과 석실, 건물지가 양호하게 남아 있어 고려시대 지배계급 묘제의 전형을 보여주는 사례로 확인되었다. 출토유물로는 청자편, 각종 금은제장식 파편, 유리그릇편·구슬류, 상부원보(祥符元寶) 1점, 은제못, 금박장식 관재 등 소량이지만 다양하게 출토되었다. 특히 봉황머리를 나타낸 은제장식편의 경우 문양이 있는 곳에만 도금처리하여 장식적 효과가 뛰어나도록 한 것이 특징적이다. 봉황문양은 전통적으로 왕비를 상징하는 문양으로 대몽항쟁기 강화에서 사망하였으나 능이 확인되지 않은 희종의 왕비인 성평왕후나 고종의 왕비인 안혜태후의 묘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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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곡장설치가 대단한 석물로 조각되어 있다

    돌 하나하나에 빈틈없는 기술력이 돋보이기도 하다.

    다음 사진들을 자세히 보면 잘 알수 있습니다.

     

     

     

     

     

     

     

     

     

     

     

     

     

     

     

     

     

     

     

     

    이로서 능묘가는길을 마감하구 다음은 전등사를 포스팅 할 예정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