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4. 22. 21:59ㆍ문화재를찾아서/한국사기행
봄 처럼 가을 처럼 너무 아름다운 의릉
지금부터 그 전경을 함께 걸어 보실까요 ~
-세계유산 조선왕릉 의릉-
의릉은 조선 제20대 경종과 계비 선의왕후의 능 이다.
경종 景宗(1688~1724, 재위1920~1724)은 제19대 숙종의 맏 아들이다. 1720년 숙종이 승하하자 33세로 즉위했으나. 몸이 병약하여 왕위를 이을 아들을 얻지 못했다. 즉위한지 두 달만에 이복동생인 연잉군(영조)을 왕세자로 삼고 국정을 맡겼다. 4년간 재위한후 창경궁 환취정에서 승하 하였다. 선의왕후(1705~1730)는 함원부원군 어유구의 딸이다. 경종의 첫째 세자빈 단의왕후가 1718년(숙종44)승하하자. 같읂 해 세자빈에 책봉되었고, 1722년(경종2) 왕비에 책봉 되었다.
혜성이 남기고 간 흔적 (경종)
우리는 경종을 비운의 왕이라 부른다. 그러나 역사는 경종을 병들고 허약했던 왕으로 기록할 뿐 왜 병약 했는지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는다, 그는 과연 태생이 유약하고 병약했던 것일까. 어쩌면 임금 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 지기에는 너무나 유순하고 야심이 없었던 것이 아닐까. 다만 실록과 야사를 근거로 그의 면면을 짐작 해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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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제 204호 |
안내판 |
조선왕릉 세계유산 |
학문에 힘쓰는 것을 중히여겼던 숙종은 훗날 경종이 될 세자에게 늘 학문의 갈고 닦음을 강조했다. 이에 세자는 4살 때 천자문을 익혔고. 8살 때 성균관 입학례를 치뤘다. 실록은 세자가 입학례를 행하는데 글을 읽는 음성이 크고 맑아서 대신들이 서로 축하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전한다. 이렇듯 경종은 조선의 여느 왕자들이 그랬듯이 어린 시절 영특함을 칭찬ㅂㄷ는 세자였다. 그러나 그가 14살이 되던 해 경종의 일대기에 반전 이라 할 만한 비극적 사건이 일어난다.
처음 가본 의릉 시야적으로 놀라고 감탄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답니다. 어~야~ 봄이야! 가을이야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온통 가을에 익어가는 나뭇잎들 너무나 보기좋은 품종 이었답니다. 바로 홍 단풍의 매력 이었어요. |
1701년 10월. 대신들의 상소가 이어졌다 "전하. 지금 희빈(경종의 생모)이 설령 용서하기 어려운 죄가 있다고 하나. 춘궁(경종)이 걱정하고 마음 상할 것을 염려하여 조금 너그럽게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지만 이미 마음을 굳흰 숙종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비록 세자의 생모라고 하나, 자신의 거처에 신당을 짓고 인현왕후를 해하려는 음모를 꾸민 장희빈의 간악함을 용서할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 숙종은 희빈 장씨에게 사약을 내리게 된다. 희미한 꼬리를 남기고 자취를 감춘 심상치 않은 혜성이 궁궐의 밤 하늘에 보였던 날의 일 이었다.
홍살문에서 바라본 정자각 |
정자각 정면에서 봅니다 |
일설에서는 이날의 정왕을 이렇게 그린다. 사약을 받은희빈 장씨는 마지막으로 아들을 보고 싶다고 숙종에게 애원을 거듭했다. 숙종은 처음에는 청을 거절 했으나 한때 부부의 연을 맺었던 여인의 마지막 소원을 끝내 거절 하지는 못했다. 결국 세자를 희빈 장씨에게 데려다 주었고. 이때 예기치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갑자기 독기서린 눈빛으로 변한 희빈 장씨가 세자에게 달려들어 세자의 하초를 움켜쥐고 잡아당겨 버린 것이다. 곁에 서 있던 환관들이 겨우 세자에게 짱씨를 떼어 놓았지만 세자는 그 자리에서 기절을 하고 말았다. 이 일하는 장희빈의 간악함을 극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후세에 호사가들이 지어낸 이야기 일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경종에게 있어 어머니 장희빈의 죽음은 큰 충격 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경종은 평생 원인이 명확하지 않은 병환에 시달렸고 자식도 낳지 못한 채 승하하고 말았다.
우측면에서 보는 경릉 |
죄측면에서 보는 경릉 |
어쩌면 경종의 짧은 생애는 혜성이 남기고 간 흔적은 아니었을까. 숙종은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해 왕위에 오르지만 정사를 돌보기 힘들었다. 경종은 자신이 항상 병환에 시달렸으므로 재위 기간 4년 동안 업적을 남길 기력도, 틈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비록 몸이 성치 못했을지라도 경종은 따뜻한 성정은 실록의 기록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는 아니지만 인현왕후를 마음으로 섬겼고. 살아서 자신에게 몹시 엄한 아버지였던지만 숙종이 병석에 들자 십 수 년 동안 약 시중을 들었다고 한다. 이에 실록은 경종 사후에 "받아 들이는 아량이 넓으시어 무릇 대신들에게 가슴을 열고 마음을 비워 받아 들이지 않음이 없었는지라, 식자들은 훌륭한 보좌가 없어 이상적인 정치를 도와 이루지 못하였음을 매우 한스럽게 여겼다" 고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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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각 |
신도비 |
정자각 |
의릉 연혁
-1724년(경종 4)경종 안장, 의릉 조성ㅇ
-1730년(영조 6)선의왕후 안장
의릉 제향일
-10월 둘째 일요일
경릉 안내도 |
경릉 안내도(보호를 위하여 가까이 접근할수 없어 참고용으로 담았습니다) |
경종의 안위를 보살펴 주듯 경릉은 화사한 봄의 꽃들이 물들어 있었으며 주위는 온통 봄인지 가을인지 3계절이 형성 되고 있었다. 맑고 고운 주위의 조경풍으로 말미암아 경종은 고이 깊은 잠을 청하고 있을 것이다.
세계문화 유산은 대한민국의 큰 자랑거리임에는 틀림이 없다. 조선 후기 조선국으로 명명하며 세계에 접근을 시도 했으며 건축문화 또한 세계를 향하여 처음 시도 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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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단풍 |
소나무 숲 |
왕 벗꽃 |
왕 벗꽃 |
우리의 문화 유산
세계유산 조선왕릉을
빠짐없이 여러분께 전하기 위하여
지금도 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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