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고려 마지막 왕 공양왕릉

2014. 2. 26. 22:24문화재를찾아서/한국사기행

화장실

공양왕릉

왕이 되고 싶지 않았다, 고려 마지막 왕 공양왕릉 비애를 느끼게 한다,

고려 마지막 왕이었던 공양왕(1345~1394, 재위1389~1392)과 그의 부인 순비(順妃) 노씨(盧氏)의 무덤 이다.

 

문화재 지정번호  사적 제191호

문화재 지정일    1970년 2월 28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에 위치하고 있다.

1970년 2월 28일 사적 제 191호로 지정 되었다.

왕릉의 양식은 쌍릉 형식이다.

무덤 앞에는 비석과 상석이 각각 하나씩 있으며

두 무덤 사이에 석등과 석호 그리고 무덤 양쪽에는 문신과 무신이 서있다.

 석호는 고려의 전통적인 양식을 띠고 있다.

조선 초기 태조의 건원릉과 태종의 헌릉 무덤 양식과 비슷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석등은 전체적으로는 외소하고, 하받침 위에 4각의 간석, 8각의 화사석 그리고 8각의 옥개석 으로 되어 있으며

화창은 2개이다. 또한 능 양쪽에 배치되어있는 석인은모두 1m정도인데,

능에 가까운 것은 보다작고 손에는 아무것도 쥐지않고 두 손을 마주잡고 있는 형태이며,

그 옆의 것은 키가 약간 크고 손에는 홀을 쥐고 서 있다.

비석은 처음부터 세워져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내 입 간판이다.

 

 

 

 

 

조선의 왈릉의 홍송과는 달리 소나무의 품종이 다르다.

 

 

고려공양왕고릉(高麗恭讓王高陵)이라는 글씨가 있는 묘표석은

조선시대 고종 때 세운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양왕릉의 전경)새로이 단장이 되어 있다

이 전의 모습으로는 잔듸가 적어 잘 자라지 안았던 모습 이었습니다.

 

 

한편 공양왕릉은 이곳뿐만 아니라 그의 유배지이며 사사지 였던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궁촌리에도 있는데,

한 사람의 무덤이 두 곳에 존재하는 것은 고려 왕실의 마지막을 상징해 주는 것이라고도 하겠다.

 

 

이 삼척 공양왕릉은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고. 1995년 9월 18일에

강원도 기념물 제71호로 지정 되었다. 앞서 경기도 고양시의 공양왕릉은 문헌에

기록되어 있으나,

강원도 삼척시의 공양왕릉은 민간에 오랫동안 구전 되었던 것이다.

 

 

 

현재 강원도 기념물로 지정된 삼척 공양왕릉은 규모가 클 뿐 아니라.

그 옆에는 왕자 나머지는 시녀 또는 왕이 타던 말 무덤 이라고 전해지기도 한다.

 

 

공양왕릉 뒤쪽으로 있는 무덤들중에는 신숙주의 손자이자 대제학을 지낸 당시의 일류 명사 기재 신광한의 무덤이다,

 공양왕릉과 신광한 무덤 사이에 연정일 무덤이 있다. 이분은 안평대군의 장인인 병조판서 정연(송강 정철의 고조 할아버지)

의 증 손녀다. 신광한의 어머니요 즉 신숙주의 며느리 이랍니다.

 

당시 정연의 가문은 신흥세력인 신숙주 가문과 비교가 되지않을 정도의 명문이며. 왕실과 이중 삼중으로 혼맥을

형성한 막강한 가문이었답니다, 이런 정황을 살펴볼때 전 공양왕릉이 묻혀있는 이 산의 원 주인인 정연 가문 이었다가

영정일씨가 신숙주의 며누리가 되면서 재산을 분재받아 이후로 고령 신씨의 재산이 된것으로 추측하고 있답니다.

 

 

 

 

 

 

 

 

 

 

 

 

파주로 가던중 이정표를 보고 찾아간 공양왕릉

같은 우리의 문화재 이건만 조선와릉과의 차이를

여실히 보여짐에 마음이 답답하기 이를대 없었다.

 

바로 관리적인 문제점이 보여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