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배롱나무 분홍빛 향기 그윽한 병산서원

2016. 8. 12. 07:35문화재를찾아서/서원·향교

병산서원


사적 제260호. 1613년(광해군 5)에 창건되었으며 유성룡의 위패를 모셨다. 원래 고려 말기 풍산현에 있던 풍악서당을 1572년(선조 5)에 유성룡이 이곳으로 옮긴 것이다. 1629년 유진을 추가 배향했으며, 1863년(철종 14) 현재의 이름으로 사액받았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에도 훼철되지 않고 남았던 47개 서원 가운데 하나이다.


혹서기가 지나고 입춘이 지났슴에도 찌는듯한 무더위는 연일 고공행진하고 있는날.

세계문화유산 안동하히마을 인근의 병산서원. 강줄기의 소슬바람은 간데없고. 한폭의 고전 그림한장이 눈에 띈다.

바로 병산서원 여름에 활짝피는 배롱나무 분홍빛으로 물든 서원의 전경은 그야말로 장관 이다.


격식을 지키면서 자연의 아름다움까지 담아낸 서원 건축의 백미를 만나 보자.

꿈속에서라도 이런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볼수 있을까?

배롱나무 휘 늘어진 줄기마다 살포시 잡아보고싶은마음. 한 아름 안아 보고 싶어라....



서원을 들어서는 첫 발걸음에도 배롱나무가 마중나와 곱게 인사를 하고 있다.






복례문 전경



서원의 백미 만대루 전경이다.



본래 이 서원의 전신은 풍산현에 있던 풍악서당(豊岳書堂)으로 고려 때부터 사림의 교육기관이었다. 1572년(선조5)에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 선생이 지금의 병산으로 옮긴 것이다. 1607년 서애가 타계하자 정경세(鄭經世) 등 지방 유림의 공의로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1613년(광해군5)에 존덕사(尊德祠)를 창건하고 위패를 봉안하여 1614년 병산서원으로 개칭하였다. 1620년(광해군 12)에 유림의 공론에 따라 퇴계 선생을 모시는 여강서원(廬江書院)으로 위패를 옮기게 되었다. 그 뒤 1629년(인조 9)에 별도의 위패를 마련하여 존덕사에 모셨으며, 그의 셋째 아들 류진(柳袗)을 추가 배향하였다. 1863년(철종 14)에 사액(賜額)되어 서원으로 승격하였다. 선현 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많은 학자를 배출하였으며, 1868년(고종5)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이 내렸을 때에도 훼철(毁撤)되지 않고 보호되었다. 일제강점기에 대대적인 보수가 행해졌으며 강당은 1921년에, 사당은 1937년 각각 다시 지어 졌다. 매년 3월 중정(中丁:두 번째 丁日)과 9월 중정에 향사례를 지내고 있다. 사적 제 26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서애 선생의 문집을 비롯하여 각종 문헌 1,000여 종 3,000여 책이 소장되어 있다.[글출처:한국관광공사]



서원의 전경









만대루 사이로 먼 경치와 배롱나무가 솟아올라 한껏 돋보여지고 있다.






배롱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380년의 역사를......



스님께서도 한컷하고 계시네요.

배롱나무의 꽃말에 부처꽃과 라고 하더군요.





배롱나무에 겹접을 하고있는 또다른 식물들....


















달팽이속의 화장실



외경이 달팽이를 닮았군요






광영지

만대루와 복례문 사이에 물길을 끌어 들여 만든 "천원지방" 형태의 연못이 조상되어 있다.

"천원지방"은 우리나라 전통 연못의 조성 원리로 조상들의 우주관이 상징적으로 표현돤 것이다.

땅을 의미하는 네모진 연못 가운데. 하늘을 상징하는 둥근섬을 두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수심양성을 근본으로 하여 학문에 정진할 수 있도록 배려한 서원 속의 정원 이다.


연못 물위에 가득히 떨어저 수를 놓은 배롱나무 꽃.



수련 한송이가 고이 피어올라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다.


 




서원앞의 낙동강 갈대밭을 지나 넓은 백사장 그리고 절벽 아래로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을 볼수 있다.






계절따라 변모하는 병산서원 .각각의 특징이 뚜렸할것같은 그모습을 차근히 지커보고싶은 마음 가득해 지는 여행 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