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유네스코 세계유산 장릉

2015. 8. 31. 21:21문화재를찾아서/한국사기행

장릉 (莊陵) 사적 제196호

조선 6대 단종(재위 1452∼1455)의 능

 

단종은 제5대문종의 아들로 1452년 문종이 재위(2년 4개월만에 세상을뜨자. 12세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어머니 현덕왕후는 단종의 출산 후유증으로 출산 하루만에 승하하였고. 단종의 작은 아버지 수양대군(세조)이계우정난으로 권력을 잡자 1455년(단종 3) 세조에게 왕위를 내주고 상왕으로 물러났다.

이듬해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등 사육신이 시도한 단종 복위 운동을 실패로 돌아갔고. 1457년(세조 3)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 청렴포(명승 제50호)로 유배 되었으며. 그 해 여름 홍수로 강물이 범람하여 물에 잠기자 영월 읍내에 있는 관풍헌으로 거처를 옮겼으며. 그 해 세조가 내린 사약을 받고 승하 하였다.

1516년(중종 11) 장릉은 비로소 왕릉의 모습을 갖출수 있었고. 1698년(숙종 24) 묘호를 단종. 능호를 장릉이라 하였다.

 

 

하마비

 

박충원의 낙촌비각

영월 군수이던 낙촌 박충원이 노신묘를 찾은 일에 대한 사연을 기록한 기적 비각이다.

 

계단을 오르면 능선을 따라 단종의 능을 오르는 길이다.

 

사릉에서 옮겨 심었다는 표지석

사릉은 바로 단종의 부인 정순왕후의 능이다.

정순왕후(1440~1521)는 판돈령부사 여랑 부원군 송현수의 딸로 1454년(단종2) 왕비로 책봉 되었다.1457년(세조 3) 단종이 숙부 수양대군(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로 유배되자 정순왕후도 궁궐에서 쫓겨나 부인으로 강봉되고 그 후 단종응 영영 만나지 못하였다. 단종이 나이 17세 나이로 죽임을 당한 것을 알게 된 정순왕흐는 매일 정업원(지금의 청룡사) 뒤 산봉우리 동망봉에 올라 영월을 바라보며 슬퍼했다고 한다.

죽을 때까지 단종을 그리워하였다. 하여 능호를 사릉이라 하였으며 82세에 세상을 떠났다.1698년(숙종24)노산군으로 강봉되었던 단종이 복위되자 정순왕후도 부인에서 왕후로 복위 되었다

 

단종의 애환을 달래기라도 하듯 공든탑을 쌓아가는 정성이 돗보여진다..

 

단종의능은 다른곳의 왕릉 보다 어덕이 있긴 하나 유독 능선을 지나서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단종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긴 뒤, 충신들이 그를 다시 왕으로 복위시키려는 계획이 밝혀져 영월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단종이 죽자 후환이 두려워 시신을 거두는 사람이 없었는데 영월호장 엄흥도가 장사를 지냈다. 중종 이후 조정에서 단종에 대한 제사와 무덤에 대한 의견이 나오게 되어, 선조 때에 이르러 상석·표석·장명등·망주석을 세우게 되었다. 숙종 7년(1681)에 노산군을 노산대군으로 하였고, 숙종 24년(1698)에 복위시켜 이름을 장릉이라 하였다.

무덤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을 세우지 않았다. 능의 양식은 간단하고 작은 후릉의 양식을 따랐으므로 석물은 왜소하면서도 간단한 편이다. 명릉이래 만들어진 사각지붕형의 등인 장명등은 장릉에서 첫선을 보이게 된다. 특히 장릉은 무덤 제도에 의해 정해진것 외에 단종에게 충절을 다한 신하들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배식단사를 설치하였다. 정려비·기적비·정자 등이 있는 곳은 이곳 뿐이며, 모두 왕위를 빼앗기고 죽음을 맞이한 단종과 관련된 것들이다.[출처 문화재청]

무엇이 열일곱 소년으로 하여금 그토록 절절한 시를 남기게 한 것일까.

 

자  규  시(子  規  時)

 

원통한 새 한 마리가 궁중을 나오니

외로운 몸 그림자마져 짝 잃고 푸른 산을 헤메누나

밤은 오는데 잠들 수가 없고

해가 바뀌어도 한은 끝이 없어라

새벽산에 울음소리 끊어지고 달이 흰 빛을 잃어가면

피 흐르는 봄 골짜기에 떨어진 꽃만 붉겠구나

하늘은 귀먹어 하소연을 듣지 못하는데

서러운 이몸의 귀만 어찌 이리 밝아 지는가

 

             [장릉지] 에 수록된 단종의 시

 

능이 있는 바로 아래쪽에 위치한 정자각

 

배각단사의 전경

단종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충신위. 조사위. 환자군노위.여인위의영령을 추모하기 위해 매년 제사를 지내는 재단이다.

 

홍살문 전경

홍살문은 참도가 ㄱ 자로 휘어져 있어서 정자각을 바로 바라보지는 않고 있다.

 

장판옥 전경

충싱위 32인 조사위 186인 환관군노위 44인 어인위 6인의 합동 위패를 모셔놓은 곳이다.

 

참도의 전경

 

수복실 전경

 

 

 

 

 

비각전경

 

정자각 전경

영천 전경

 

 

영천의 하부

 

보호수

느릅나무 수령 70년 수령 370년. 수고 22m. 나무들레 3.9m

 

 

 

정자각와 멀리 보이는 단종 능

 

한켜에 있는 연못

 

이곳의 수령은 여타 보지 못했던 크기의 수령이 피어 있다.

수련의 송이가 다른 꽃들보다 그 크기가 유별히 큰것이 특징이다.

 

 

 

 

 

 

 

고 싸움이라 했던거요,,,

이 길쌈은 장릉에서 본 칡의 줄기로 엮어 만들어져 있는 점이 특징이다.

 

 

 

재시릐 전경

 

 

 

재실 내부의 향나무

 

엄홍도 정려각 전경

1720년 영조 2년에 어명으로 새운 비각으로 엄홍도의 충절을 기리는 정려각 이다.

 

 

 

 

 

 

 

단종 역사관 내부이다.

촬영 할 수 없는 곳이기에 2컷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단종 역사관 전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