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하얀눈 하얀마을 육지속의 섬 회룡포

2015. 1. 15. 21:48강물따라달리자/낙동강물길따라

한폭의 동화같은 전경으로 유명해진 동네 "육지속의 섬" 회룡포

 

하얀 설경이 펼처진 회룡포는 겨울 그 이상의 육지속의 섬으로 뿅뿅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의 힐링이 이어진다.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는 회룡포는 4계절 모두가 다른 이상적으로 보여 지지만 특히 셜경이 보이는 이미지만 못하다.

 

회룡포는 ?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 회룡포 마을은 예천군으로부터 약 17km 서쪽에 위치하며 문경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과 금천이 남쪽과 서쪽으로 흐르고 비옥한 농경지가 잘 형성되어 농산물을  생산하는데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답니다.

그리고 회룡포 마을, 봉수대, 원산성, 회룡대, 장안사 등의 많은 관광자원이 있으며 용궁향교, 황목근, 무이서당 등 많은 문화재가산재되어 관광지로 유명하다.

용궁면은 신라시대 군부행정의 중심지로 축산군이라 칭하였습니다.

고려 성종시(982) 지방제도 확립에 따라 ‘용주’라 개칭하고 자사를 두었습니다.
고려 현종(1010) 용주군으로 개칭하고 상주목에 소속되었습니다.
조선시대(1410) 지방제도 개편시 용궁현으로 안동진 관할로 있었습니다.
1894년 갑오경 장시 현을 군으로 개칭했습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예천군에 병합, 현재 용궁면이 되었습니다.

 

 

우리 마을은 주민의 80%이상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마을로 넓은 평야와 수리 시설이 완벽하게갖춰진 논·밭에서 우수한 품질의 다양한 농·특산물이 생산되고 있습니다.

많은 햇빛과 깨끗한 물, 건강한 흙이 함께 하기에 좋은 농산물이 많답니다.

임금님께 진상했다는 용궁진상미.친환경을 생각하는 대장금쌀.주렁주렁 거봉포도, 맛있는 애호박에 수박까지…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다고 한다.

 

 

전망대 가는길 장안사에서 본 회룡포

 

 

 

 

 

 

 

행운의 계단전경. 계단을 오르면서 좌우측으로 배치된 유명 시인의 시한수 보면 거닐다 보면 금새 전망대를 도착 할 수 있다.

 

 

 

사랑의 자물쇠라는 설명과 무색하게 각종 산악회 리본만이 전시되고 있다.

이러한 사랑의 언약 자물쇠가 채워질 공간 이란 홍보 미흠인듯 하다. 자물쇠 살곳이 없다.

사전에 구입해가면 이곳 전망대에서 사랑의 언약이 이루어 질수 있다.

 

 

 

 

 

 

 

전망대 전경 육각정으로 지어져 있다.

 

 

 

-하얀편지-

                              초희/윤 영 초

하늘의 축전이 하얗게 열리고

시린 바람끝에 달린 너를 향한 애닮픔

눈송이 수만큼 사연을 담아도 할 말은 많은데

너에게 전해질 말을 쓰지 못하고 발자국만 남겼다

 

소담스런 눈송이가 너를 향한

그리움으로 흩날린다

밤새 손님으로 내린 눈

너에게 보낼 편지를 간추렸던 마음

들켜버린 보고픔은

처마끝에 고드럼으로 날카롭다

 

너의 손길 다정했던

기억을 담아 너에게 쓴 편지

네가 있는 그곳에 달려가

따스한 미소를 전할 수 있다면 춥지 않을 텐데

 

찬바람 송송 뚫린 옷자락에 내려앉은 눈송이는

슬픔처럼 녹고 있다

서럽도록 녹고 있다

핏기없는 하얀 편지를 하염없이 바라 보았다

 

 

 

향석과 대은에는 언제부터인가 전해내려 오는 ‘석전(石戰)놀이’가 있습니다. 
석전놀이’는 말 그대로 돌을 던져 서로 싸우는 놀이로써 성격으로 보면 싸움이고, 결과적으로 보면 전해져 내려 오는 놀이입니다. 우리마을 사람들은 이 놀이를 ‘팡개싸움’ 혹은 ‘팔매싸움’ 이라 하는데 팡개란 ‘던지다’ 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향석리와 대은리 주민들이 두 마을의 경계인 축산 능선에서 정월 대보름날 초등학생 또래부터 싸움이 시작되어나중에는 차츰 연령이 많아져 40세 미만의 장년층까지 싸움이 이어집니다. 
그러나 위험한 싸움임에도 불구하고 크게 다치거나 마을 사람들과의 언쟁은 없습니다. 
다만 이러한 싸움을 크게 하는 이유는 그 해 농사가 대 풍년이 들고 좋은 일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향석과 대은 모두 이 싸움이 끝나면 농사철이 되어 들판에서 일을 하다 만나거나 인근 장터에서 서로 만나도 일체 싸움은 하지 않고 화목하게 잘 지냅니다.

 

 

 

 

 

 

향석리는 본래 용궁현의 소재지랍니다. 
쉽게 말해서 지금의 읍내였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군청도 있었고, 큰 장날도 섰다고 합니다. 
예천읍내나 군내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예전에는 우리마을 향석에서 했어요. 
하지만 아쉽게도 철종 7년(1856), 큰 장마로 인해 내성천과 낙동강이 넘쳐 현청이 떠내려감에 따라 .그 다음해에 현청을 금산 아래로 옮기고 구읍면이 되었습니다. 
당시 용궁군(현재 용궁면)은 구읍면 등 10개면을 관장하는 웅군이었고 1914년 용궁군이 예천군에 합병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향사리의 향자와 석정리의 석자를 합하여 “향석”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태조 7년(1407)에 창건한 용궁향교(유형문화재 제 210호)가 있습니다. 
춘추향사가 있으니 그때 오셔서 옛것을 보고 배우고 가시라고 한다.

 

 

 향석2리 뒤 비룡산에는 원산성이 있습니다. 
 이 성은 백제 시조 온조가 남하할 때 마한 최후의 보루인 곳을 점령한 후 백제를 세웠다고 합니다. 
 당시 격렬한 전투로 인해 지금도 언덕에는 비가 많이 오면 성 아래 마을 성저마을(향석2리)에 원귀의 소리가 들려온다고 합니다. 
 아직도 이 성 부근에는 많은 고분이 흩어져 있으며 봉수대와 군창지도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마을 주민들의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과 애정으로 원귀 소리하나쯤은 문제도 아니랍니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몬 뿅뿅다리. 이곳에는 2개소의 뿅뿅다리가 설치 되어있다. 하지만 사람들의 이동이 많은 다리가 바로 이곳이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회룡포 마을 전경이다.

 

 

 

 

 

 

 

‘윤사석’이 조선 연산 폭정을 피하여 청주로 옮겨갔다가 그 아들 ‘윤욱’이 후환이 두려워 조선 12대 인종때 용궁무이에 있다가 은신처가 마땅하지 않다고 하여 그의 6대손 윤인이 이곳으로 옮겨와 오랫동안 숨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안동에 하회마을이 있다면 예천에는 그보다 더한 물돌이마을 “회룡포”가 있습니다. 
회룡이라는 말은 태고에 용이 내성천을 타고 상류를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유래된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마을에는 ‘이계바위’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 곳은 맑은 물이 굽이쳐 흐르고 사시사철 나룻배가 넘나들어 고을관리들과 기생들의 놀이터로 유명한 장소였죠. 
그러나 여름 어느 날 ‘이계’라는 기생이 놀다가 커다란 동굴 속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후 그 마을 사또는 이 바위를 ‘이계바위’라 칭하고 정성스레 제사를 지내주었답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비가 오는 날이면 동굴 속에서 여러 동물들의 울음소리 같은 것이 들리기도 하고 날씨가 맑고 좋은 날이면 강 상류 30리 밖 개포면 동송마을의 떡방아 찧은 소리, 개 짓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지금은 동굴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지만 그 바위만은 옛 모습을 간지기한 채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한다.

 

 

 

 

 

 

 

 

 

 

 

 

 

 

 

 

 

 

 

 

 

 

 

 

 

 

 

 

 

 

 

 

 

 

이곳 뿅뿅다리는 마을 우측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바로 관광차원인것으로 볼수 있다.

 

 

 

 

 

 

 

차가운 물속의 백로들 이들 은 회룡포와의 영원한 벗 들 이다.

 

 

 

가장 많은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마을 왼쪽의 뿅뿅다리다.

 

 

 

 

 

 

 

다정한 연인이 손에손을 잡고 데이트를 즐기고 있다.

 

 

 

 

 

 

 

 

 

 

 

 

 

 

 

눈이 부시게 내려 쬐이는 햇쌀은 뿅뿅다리위를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