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유네스코 세계유산 서삼릉

2012. 8. 8. 17:02문화재를찾아서/한국사기행

- 서 삼 릉 -           사적 제 200호

서삼릉 이란

희릉. 효릉. 예릉 을 아울러 일컷는 말이다

희릉은 조선 제11대 중종의 계비 장경왕후 윤씨의 능 이다

중종 32년(1537) 경기도 광주에서 이곳으로 옮겨졌다

원래는 중종의 정릉을 희릉 곁에 썼으나 명종 17년(1562)에

정릉을 서울 강남구삼성동 성종의 선릉

곁으로 옮기면서 희릉만 남게 되었다

 

효릉은 중종의 아들인 제 12대 인종의 능으로 명종 즉위년(1545)에 조성 되었다

그 후 인종의 왕비인성왕후 박씨가 선조 10년(1577) 돌아가시자 나란히

자리한 쌍릉으로 조성 되었다

 

예릉은 제 25대 철종의능으로 고종 원년(1864)에 조성 되었다

그 후 철종의 왕비 철인왕후 김씨가 고종 15년(1878)에 돌아가시자

나란히 자리한 쌍릉으로 조성 되었다

 

이 밖에도 능 경내에는 세자의 원(묘소) 3기와 역대의 후궁. 대군. 군. 공주. 옹주 등의 묘 45기가 있다

 

 

서삼릉 정문

 

 

 

 

 

서삼릉 관람 안내도

 

 

 

 

매표를 하고 내부로 들어 갑니다

작은 사거리 흙길로 잘 조성이 되어 있습니다

좌로는 효창원 의령원 방향이며

직진으로는 예릉 입니다

그리고 우측으로는 희릉으로 가는 방향 입니다

 

 

 

먼저 좌측 방향으로 이동을 해 봅니다

곶고 바른 소나무가 효창원 의령원으로

오는 관람객을 마중을 나와 있는듯 합니다

 

 

 

효창원 의령원 재실

 

 

 

 

 

 

 

 

 

 

 

효창원 묘소(문효세자)

조선 정조의 아들 문효세자의 묘소이다

문효세자(1782~1786)는 의빈 성씨의 소생으로

1782년(정조6년0에 태어나 5세의 어린 나이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처음에는 용산구 청파동 효창공원에 있었으나

일제 강점기인1944년 이곳으로 이장 되었다

 

 

의령원은 효령원 바로위에 있다

조선 영조의 아들 장조 사도세자의 제1자 의소세손의 묘 이다

의소세손(1750~1752) 이름은 정이며 3세의 어린 나이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처음에는 서대문구 북아현동(중앙여고)에 있었으나 이곳으로 이장 되었다

비문의 글씨는 어필이다

 

 

 

 의령원 후사면에서 바라본 묘지 전경

 

 

 

 

 효창원과 이령원을 뒤로하고 다시 돌아서 나옵니다

이제 예릉을 향하여 봅니다

예릉이 있는 전체적인 전경 입니다

 

 

 

 전면에 금천교를지나 홍살문이 있으며 그뒤로 정자각이 보입니다

정자각 뒤로 예릉이 있습니다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의 참도는 왼쪽의 약간 높은 길은 신이 다니는 길이라하여 신도

오른쪽 약간 낮은 길은 임금이 다니는 길이라하여 어도라 한다

 

 

 

 여기는 배위 라고 합니다

배위란:홍살문옆 한평 정도의땅에 돌을깔아 놓은곳으로 왕이나

재관이 절을 하는 곳이다

 

 

 

 정자각

정자각은 제향을 올리는 정(丁)자 모양으로 지은집

제향을 올릴때 왕의 신주를 이곳에 모신다

우측의 돌 계단은동계라고 한다

동계는 왕. 제관 등이오르내리는 계단 오른발을 먼저 내딛는다

 제향을 올리는 차림과 그 방법이 수록 되어 있습니다

 

 

 

 

 비각

비석이나 신도비를 세워둔곳

신도비는 능 주인의 업적을 기록한 비석을 가르킨다

 

 

 

 예릉

조선 제 25대철종과 그의 왕비 철인왕후 김씨의 묘이다

철종(1831~1863,재위 1849~1863)은 장조(사도세자)의 증손자이며 전계

대원군의 세째 아들이다

1849년 현종이 재위 15년만에 후사가 없이 승하하자 순조의 비 순원왕후인

 대왕대비에 의하여 강화도 촌거로부터 영입되어 19세때 창덕궁 인정전에서 즉위 하였다

재위14년동안 처음 3년간은 대왕대비가 수렴청정 하였고 그 뒤로 안동김씨의 세도로 인하여

국정을 바로 잡지 못하고 1863년에 창덕궁 대조전에서 승하 하였다

 

 

 석마와 무인석 문인석이 세워저 있습니다

문인석:장명등 좌우에 있으며 두손으로 홀을 쥐고 서있다

무인석:문인석 아래에서 왕을 호위하고 있으며 두손을 장검을 짚고 위엄있는 자세로 서있다

석마:문인석과 무인석은 각 석마를 데리고 있다

 

 

 좌측으로의 석마 문인석 무인석

양쪽으로 서있다

 

 

 

 철종릉의 혼유석

혼유석:일반인의 묘 에는 상석이라하여 제물을 차려 놓는곳 이지만

왕릉은 정자각에서 제를 올리므로 혼령이 앉아 노는 곳이라함

난간석:봉분 주위를 보호하기 위해 봉분 둘레에 설치한 돌 난간임

높은 기둥은 12 지주라고 하며12방위를 표시한다

 

 

 봉분

봉분:능 주인이 잠들어 있는 곳 능침 이라고도 한다

철인왕후의 묘소임

 

 

 

 

 곡장

곡장:봉분을 보호하기 위하여 삼면으로 둘러놓은 담장

 

 

 

 능 옆으로의 호위하듯 서있는 소나무들

 

 

 

 

 능 아래서 보는 문인석 무인석 과 석마의 모습

 

 

 

 

 

예릉에서 다시 희릉으로 이동을 해 봅니다

 

 

 

 

 숲 속의 나무는 뿌리가 서로 붙어 있네요

서로의 사랑으로 간직하는 행복으로 보여 집니다

연리지가 아닌 연리근이라고 해야 되나요....

 

 

 희릉의 홍살문 과 참도(삼도)

 

 

 

 

희릉의 정자각

 

 

 

 

 희릉

희릉은 조선 제 11대 중종의 제 1계비 장경왕후 윤씨의 능이다

장경왕후는(1491~1515)는 파원부원군 윤여필의 딸이다

1506년에중종의 후궁인 숙의로 책봉 되었으나

정 비인 단경왕후 신씨가 폐위되자

1507년에 왕비로 책봉 되었다

1515년에 ㅔ자인 인종을 낳은 후 산후병으로 이나여

경복궁 별전에서 승하 하였다

 

 

 

 

 문인석 무인석 석마가 서있다

망주석:봉분 좌우측에 각 한주씩 세우는 기둥으로 일명 수구막 이라고도 한다

석양석:죽은이의 명복을 빌며땅속의 사악한 것을 물리친다는 뜻으로 설치했다

석호석:석양과 함께 능침을 수호하는 호랑이 모양의 수호신 밖을 지켜보는 형태로 설치했다

 

 

 

 

 양쪽으로 서있는 모습이다

 

 

 

 

 장명등

장명등:왕릉의 장생발복을 기원하는 등

 

 

 

 안으로부터 석호. 석양2. 망주석 입니다

 

 

 

 

 

 희릉에서 바라보는 전경

 

 

 

 

 장경왕후의 비각

 

 

 

 

 

 

 현재 공개되고있는 서삼릉 입니다

 

 

 

 

 

 비공개 되고있는 지역의 릉 입니다

 

 

우리의 역사가 숨쉬고 있는 조선 왕조

제1대 태조 에서

제27대 순종에 이르기 까지의

역사를 탐방 하여 그 산실을 공부 하고자 합니다

 

본 포스팅을 통하여 왕릉의 상설(각종 시설 및 석조물의 이름과 역할)에 관하여도

여러분께 많은 도움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추천은 글 쓴이에게 많은 행복을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