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민자방-경숙옹주묘(閔子芳-敬淑翁主墓)

2018. 6. 5. 09:00문화재를찾아서/한국사기행

민자방-경숙옹주묘(閔子芳-敬淑翁主墓) 


경기도 부천시 작동 산 57-2


경숙옹주(敬淑翁主)[1485~?]는 성종과 숙원김씨 사이에서 태어난 다섯째 딸이다. 민종원(閔宗元)의 아들 민자방(閔子芳)과 혼인하여 아들 1명을 낳았다. 울산시 울주군에 남아 있는 태실과 태실비로 1485년(성종 16)경에 출생한 것은 알 수 있으나 사망 연대는 알 수 없다. 민자방(閔子芳)은 본관은 여흥(驪興)이며, 성종의 부마(駙馬)가 되면서 봉헌대부(奉獻大夫)로 봉해졌으며, 여천위(驪川尉)라는 작위를 받았다.


『연산군일기』 등 사서에 의하면, 민자방은 연산군의 총애를 받아 수시로 임금과 후원에서 교유하고 말과 첩을 하사받기도 하였다. 중종반정(中宗反正) 이후 연산군 시절의 처신이 문제가 되어 처벌을 받고 향리에 은거한 것으로 보이나, 생몰년은 알 수 없다. 다만, 후일 외손이 지은 묘비의 음기를 토대로 역산하여 1493년경에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문인석과 망주석




경숙옹주 묘는 남편 민자방 묘와 쌍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봉분은 근래 새로 조성한 호석으로 둘러져 있다. 묘역은 1단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묘비·혼유석·상석·향로석·망주석·장명등·문인석의 석물이 갖춰져 있다. 묘비는 이수 부분에 용과 구름 모양이 새겨져 있다. 비좌는 방부형으로 상부에는 복련문(覆蓮文), 측면에는 안상이 표현되어 있다. 비신의 규모는 높이 116㎝, 너비 55.5㎝, 두께 23㎝이고, 비좌의 규모는 가로 90㎝, 세로 59㎝, 두께 33㎝이다.


묘비의 전액과 후액에는 비문이 음각되어 있다. 비문에는 “이들이 타계한 지 150여 년이 지난 1643년(인조 21)에 외손이 썼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문헌에 전하나, 현재로서는 비문의 마모가 심해 그 내용을 판독할 수 없다.




장명등 이쉽게도 허리 부분이 깨어져 부러진 모습이다.


장명등은 팔작지붕형 옥개·화사석·기단부가 모두 갖춰져 있으며, 높이는 190㎝이다. 옥개석의 크기는 가로 75㎝, 세로 72㎝이고, 화사석의 크기는 가로 35㎝, 세로 30㎝이며, 화창의 크기는 가로 11㎝, 세로 13㎝이다. 화사석 하단부와 기단부에는 사면에 안상이 음각되어 있다. 장명등의 중간 부분에는 45°로 절단한 흔적이 남아 있다. 문인석은 복두공복 차림으로 높이는 각각 160㎝, 168㎝이며, 망주석 1쌍의 높이는 각각 175㎝, 170㎝이다.







문인석




묘비의 전액과 후액에는 비문이 음각되어 있다. 비문에는 “이들이 타계한 지 150여 년이 지난 1643년(인조 21)에 외손이 썼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문헌에 전하나, 현재로서는 비문의 마모가 심해 그 내용을 판독할 수 없다.


1970년대에 도굴된 태항아리 2점과 태지(胎誌) 1점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옹주묘 가운데 비교적 이른 시기인 조선 전기의 분묘로 묘비·문인석·장명등 등 각종 석물이 잘 남아 있어 조선 전기 유력한 가문의 묘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상위글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