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도호부청사(仁川都護府廳舍)

2018. 3. 22. 12:01문화재를찾아서/한국사기행


인천도호부청사(仁川都護府廳舍)

인천광역시 시도유형문화재 제1호

인천광역시 남구 관교동 146-1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호. 청사는 원래 15∼16동의 건물로 구성되었다고 전하나 현재는 객사(客舍)의 일부와 19세기 초 건물인 동헌(東軒) 및 훨씬 후대에 세워진 창고만이 남아 있다.

객사는 지붕기와에서 발견한 명문(銘文)에 의해서 1677년에 중수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으나 1950년 현 문학초등학교를 세우면서 동헌과 함께 지금의 위치로 이전 개축하였기 때문에 당초 건물들의 배치·형태를 알 수가 없게 되었다.


객사는 윈래 20칸의 규모였다고 전하여지나 현재는 양쪽 익랑채가 없어지고 박공지붕으로 된 중앙부의 정면 3칸 측면 2칸의 건물 일부만 남아 있다. 동헌은 합각지붕의 굴도리집으로서 관청 건물로는 드물게 부연을 달지 않은 홑처마지붕을 하고 있으며 기둥도 둥근 기둥이 아닌 네모기둥을 사용하고 있다.

인천 도호부 청사의 건축 시기는 정확하지 않으나 객사를 보수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기와의 ‘강희 16년’이라는 명문(銘文)으로 볼 때 1677년(숙종 3)에 중수된 것을 알 수 있어 그 이전에 건축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현재는 정면 6칸, 측면 3칸의 동헌 건물과 정면 3칸, 측면 2칸의 객사 중앙부 건물만이 남아 있다.

인천도호부 청사 건물 중 군관청은 해방 이전까지 파출소로 사용되다가 불타 없어졌고, 내동헌은 1955년까지 인천시 문학 출장소로 사용되다가 헐렸다.
2002년에 현재의 위치인 인천광역시 남구 문학동 349-2에 인천도호부 청사의 재현물을 만들어 다양한 전통 문화 체험과 공연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1871년 간행된 「화도진도(花島鎭圖)」와 1899년 간행된 『인천부 읍지(仁川府邑誌)』를 통해 당시 인천도호부 관아의 규모를 추정할 수 있는데, 객사[20칸], 동헌[10칸], 내동헌[33칸], 삼문(三門)[3칸], 사령청[9칸], 향청[13칸], 군관청[7칸], 훈무당[4칸], 옥사[4칸], 어용고, 군기청[7칸] 등 15~16동의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인천도호부 청사는 현재는 객사(客舍)의 일부와 19세기 초 건물인 동헌(東軒) 및 훨씬 후대에 세워진 창고만이 남아 있다. 문학 초등학교 교사(校舍)를 건립하면서 남아 있던 동헌 등의 건물을 이전, 개축하였기 때문에 당초 건물들의 배치 형태를 알 수가 없게 되었다.

객사는 원래 20칸의 규모였다고 전하여지나 현재는 양쪽 익랑채가 없어지고 박공지붕(牔栱지붕)[건물의 모서리에 추녀가 없이 용마루까지 측면 벽이 삼각형으로 된 지붕]으로 된 중앙부의 정면 3칸, 측면 2칸의 건물 일부만 남아 있다. 동헌은 합각지붕(合閣지붕)[위 절반은 박공지붕으로 되어 있고 아래 절반은 네모꼴로 된 지붕]의 굴도리집[접시받침과 굴도리를 써서 지은 집]으로서 관청 건물로는 드물게 부연(附椽)[처마 서까래의 끝에 덧얹는 네모지고 짧은 서까래로 처마 끝을 위로 들어 올려 모양이 나게 한다]을 달지 않은 홑처마지붕을 하고 있으며, 둥근 기둥이 아닌 네모 기둥을 사용하고 있다.
















인천도호부 청사는 1982년 3월 2일 인천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었다. 현재 보존 관리는 문학 초등학교에서 담당하고 있으며,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일반 관광객들을 위해 마련한 인천광역시 남구 문학동 349-2번지의 인천도호부 청사 재현물은 매주 월요일을 제외하고 하절기[3월 1일 ~ 10월 31일]에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동절기[11월 1일 ~ 2월 28일]까지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개장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문화 해설사가 상주하여 인천도호부 청사에 대한 안내를 하고 있다. 재현물의 주요 시설로는 객사(客舍), 아문(衙門), 동헌(東軒), 중문(中門), 공수(公須), 삼문(三門), 사주문(四柱門), 충의비(忠義碑)가 있고, 매년 인천도호부 대제를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