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보물 제10호 강화 장정리 오층석탑 (江華長井里五層石塔)

2018. 2. 19. 21:03문화재를찾아서/사찰·성지




보물 제10호 강화 장정리 오층석탑 (江華長井里五層石塔)


보물 제10호

인천광역시 강화군 하점면 장정리 산193


높이 3.5m. 일찍이 쓰러져 파손되었던 것을 1960년에 각 부재를 수습하여 보수 재건하였다.

파손이 심하고 없어진 부재도 적지 않아 현재는 3층 이상의 옥신(屋身)과 5층 옥개석, 그리고 상륜부재가 모두 없다.

그런데 이 석탑이 서 있던 위치는 언덕에서 파생된 지맥(支脈) 위라는 점이 특이하다. 단층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건립하고 정상에 상륜부를 장식한 방형중층(方形重層)의 일반형 석탑으로 여러 개의 장대석으로 지대를 구축하고 그 위에 기단을 받치고 있다.

기단면석은 4매석으로 구성되었는데 2면은 우주가 있는 판석이고 다른 2면은 면석만으로 되었고, 탱주(撑柱: 받침기둥)는 모각되지 않았다.

갑석(甲石)은 두꺼운 1장의 판석을 덮고 있는데 아랫면에는 부연(副椽: 탑기단의 갑석하부에 두른 쇠시리)도 없다. 윗면은 약간의 경사가 있고 중앙에는 1단의 굄대를 마련하여 탑신부를 받치고 있다.

탑신부는 초층 옥신이 두 개의 석재로 이루어졌고, 초층 옥개석 이상은 옥신과 옥개석이 모두 1장씩으로 되었다. 초층 옥신은 크기가 다른 2매석에 큼직한 우주형(隅柱形)이 모각되었다. 2층 옥신은 초층에 비해 높이와 넓이가 급격히 줄어들었고, 우주형은 형식적으로 표시되었다.

옥개석은 비교적 평박한 편으로, 아랫면의 받침은 초층이 4단이고 2층부터 4층까지는 3단으로 줄어들었다. 추녀 밑은 직선이나 네 귀퉁이에 이르러 가볍게 반곡(反曲)을 보였고, 낙수면은 반곡 없이 흘렀으며, 전각(轉角)의 반전은 매우 작은 편이다.

2층 이상의 옥개석도 양식은 같으나 크기에 있어서는 체감되었으며, 각 층에 파손이 심하여 전각부는 거의 대부분이 깨어져 있다. 상륜부의 부재는 하나도 남은 것이 없다.



강화 나들길 18코스 하점면 장정리에 위치한 오층석탑



봉천상 중턱에서의 안내도






이곳은 봉은사지 내의 오층석탑이다.

봉은사는 고려시대 국가사찰로 고종19년(1232)에 수도를 강화도로 옮길때 함꼐 옮겨졌다.



봉은사지 계단 입구



막돌형식으로 쌓여진 봉은사지



5층석탑 전경



방형의 우물터



정면에서 본 오층석탑



보물 표지석 후면에는 대한민국이란 글씨가 또렸하다.



전면의 보물표시의 글씨체는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다.



정면에서 본 오층석탑



후사면에서 본 오층석탑



좌측면에서 본 오층석탑



석탑의 기단 형태 1층



2층의 기단 형태도 1층과 같다



봉은사지와 오층석탑



봉은사지는 막돌 형태로 언덕을 보완했던 모습이다



봉은사지 후면의 봉천산 정상의 봉천대가 바라다 보인다

봉은사는 고려광종 2년(951)에 창건되어 태조 왕건의 진영을 봉안한 국가사찰 이었는데, 고종 19년(1232)에 몽고의 침입을 피해 수도를 강화로 옮기면서 개성 봉은사와 같은 이름의 절을 이곳에 세웠다고 한다.

고려 고종 36년에서 46년(1249`1259)까지 매해 2월 연등회를 개최 하였으며, 고종에 이어 등극한 원종 역시 7차례 연등회를 개최 하였다고 한다. 폐사의 시기는 확실치 않으며, 사지 내에는 오층석탑과 방형의 우물만 지금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