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영국군 설마리 전투 추모공원

2017. 11. 20. 16:15어디로갈까/축제·공원·테마

영국군 설마리 전투 추모공원


영국군 6,25 참전

첫 참전일 미국에 이어 1950년 6월 29일

참전군 명수 5만 6,000명

참전군 전사자 1,078명

참전군 부상자 2,674명

참전군 실종자 179명

참전군 포로 997명



영국은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의 병력을 한국에 파견했다.

영국의 참전은 유엔군 창설 이전에 이루어졌다. 영국 육군은 먼저 홍콩에 주둔 중인 2개 대대와 지원부대로 제27여단을

구성해 곧바로 낙동강 방어작전에 뛰어들었으며,

제27여단은 압록강으로의 북진작전에 일익을 담당하기도 했다.

이후 영국은 추가로 제29여단을 편성해 참전했다.


제29여단이 많은 희생을 치르면서도 제8군의 작전에 크게 기여한 것은

중공군 5차 전역(4월 공세) 당시 벌인 임진강 유역 적성면 중심부 설마리 전투에서이다.

제29여단은 1951년 4월 22일 한국군 제1사단의 방어선이 붕괴돼 우측의 글로스터(Gloucester) 대대가

큰 피해를 입으면서도 3일간 진지를 굳건히 지켜 좌우측의 아군을 위기에서 구출했다.


.글로스터 부대의 베레모 조형












베레모 조형물 후면으로는 반 원형의 추모벽이 있다.
처음 배를타는 모습부터 귀국하기까지의 애환을 담은 포스터들이 빼곡히 매꺼저있다.

보는이로 하여금 금새 눈시울이 적셔지기도 여러번 반복한다.






베레모 조형물 후면 핟단에 새겨진 글로스터 부대원 전사자 620명의 이름이 새겨저 있다.
가운데 벽에는 "당신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Their Name Liveth For Evermore)"란 어문이 적혀있다.
앞단에는 ‘글로스터 영웅들’이란 제목의 추모시(윤성택 작)가 적혀 있습니다.






후면으로 보이는 이 고지가 글로스터 힐이라고 부르는 235고지 이다.
임진강 가까이에 있는 148고지의 중성산이  글로스터 부대가 최후의 교전을 펼친 곳이다.



설마리 전투와 임진강 전투는 중공군의 5차 공세
1951년 1월 4차 공세 때 다시 서울을 빼앗긴 중공군은 1951년 4월 다시 서울탈환 목적으로 재 침공계획
30만 대군 중공군+북한군 중 4만 2천명의  인해전술 앞에서도 굴하지않고 660명의 글로스터 대대가 막아내는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허나 글로스터 대대는 혁혁한 사투를 벌였으나 고지에 포위되어 결국 후퇴하는데, 탈출에 성공한 병사는 67명 전사자 59명 526명은 적에게 포로가 되었다.

고지사수에는 실패했지만 글로스터 대대의 지대한 공헌으로 만 3일 정도의 시간을 벌어준 덕분에

유엔군은 후방 전열을 가다듬은 연합군은 중공군을 다시 공격하여 승리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