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유네스코 세계유산 영릉(세종. 소헌왕후)

2012. 6. 25. 23:08문화재를찾아서/한국사기행

한강 제 3경 여주보 인근의 영릉(세종.소헌왕후) 탐방을 소개해 올립니다.

세계문화유산 사적 제 195호

열릉은 세종대왕 과 소헌왕후 를 합장한 능이다.

세종대왕은 조선조 제4대 왕으로 1418년 왕위에 올라 1450년 승하하니

재위 32년에 춘추가 54세였다.

세종대왕은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군으로 한글(훈민정음: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 등록)

창제하고 측우기. 혼천의. 해시계 등 과학기구를 발명하고 제작 하였다.

아악을 정립하고 북방의 야인을 정벌하고 4군과 6진을 개설하여 우리나라의 국경선을 압록강과 두만강으로

확정 하였으며. 일본 대마도(쓰시마)를 정벌하여 국방을 튼튼히 하였다.

학문을 숭상하여 학자를 기르고 활자를 개량하여 월인천강지곡:(부처의 공덕을 칭송한노래)

용비 어천가(조선의 창업을 찬양한 노래) 농사직설(농업 기술을 모은책) 삼강 행실도(윤리 덕행을 찬양한 노래)

팔도 지리지(한국의 지리책) 석보상절(석가의 일대기) 의방유취(의학백과사전 등 수많은 책을 발간 하였다.

또한 농업을 장려하고 백성을 사랑하였으며 어진 성덕이 하늘같이 높았다.

영릉은 원래 서울 헌릉 서쪽에 있었던 것을 예종 원년(1469)에 여주로 옮겨왔다.

세종대왕의 위대한 업적을 길이 승모하고 그 위업을 오늘에 이어받아 민족문화 창조의 기틀로 삼고자

1975년 부터 1977년까지 세종전을 세로짖고 경역을 정비하여 현재와같은 모습을 갖추었다.

 

 

정문 통과후 바로 우측에 세종대왕 상이 우뚝서있는 모습 입니다.

 

 

 

 

 

정문 우측에 설치된 안내판 입니다.

 

 

 

 

[먼저 세종대왕의 과학적 기구를 개발한 기구들을 먼저 살펴 보기로 합니다]

 

 

-혼  상-

하늘의 별자리를 적도와 황도 좌표의 각도로 둥근 구면위에 표기하여 별자리의 위치를 살펴 볼수 있도록 한 천문기기이다.

 

 

 

 

-간  이-

고도와 낮과 밤의 시간을 정밀하게 측정 할수 있었던 조선시대 가장 대표적인 천뭄관측 기기이다.

 

 

 

-소 간 의-

천체의 위치 관측. 시간 측정을 할수있는 천문 기기이다.

세종시대에 독창적으로 창제된 세계유일의 천체관측 기긱이다

해. 달. 행성과 별의 위치 고도 방위를 측정 할수 있다.

 

 

 

 

-일성정시의-

세종 19년(1437)에 만들어졌다.

해시계와 별시계의 기능을 하나로 모아 고안하여 낮과 밤의 시간을 측정하는 천문 기기이다.

 

 

 

 

 

-현주일구-

세종 19년에 창제된 일종의 해시계이다.

 

 

 

-천평일구-

해시계의 중의 하나이다.

용 기둥으로부터 남쪽 못 까지 연결된 실은 하늘의 적도면과 일치하도록 설치 되어있는 시반면 중앙을 수직으로 통과하여 태양빛에 의해 시반면 위에

맺흰실 그림자로 그때의 시간을 알수 있다.

 

 

 

-정남일구-

해시계의 하나이다.

지남침이 없이도 남쪽 방향을 결정하여 시각을 측정하는 천문 기기이다.

 

 

 

-혼천의-

혼천의는 국보 제230호 이다.송이영의 혼천시계 중의 혼천이다

천체의 운행과 위치등을 관측하는 기기로 조선 세종때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졌다

현재 일만원권 뒷장에 그려져있는 혼천의다

 

 

 

-관천대-

관천대는 조선시대 천문 관측대로 일명 간의대 또는 첨성대라고 부르기도 했다

보물제 851호 관천대(창경궁 소재)이다.

 

 

 

-일구대-

일구대는 앙부일구(해시계)를 올려놓는 받침대로 화강암에 이름다운 조각을 해 놓은 것이다.

지금은 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있슴.

 

 

 

-천상열차분야지도-

하늘의 형체를 본떠 황도부근을 12지역으로 나눈 12차와 이에 대응하는 지상의 지역인 분야에 맞추어 별자리 위치와 크기를 시실적으로 그린 천문도이다.

현재 국립고궁 박물관 소장 되어 있으며 국보 제228호 이다.

 

 

 

 

-측우기-

강우량을 측정하기 위하여 세종 23년(1441)에 세계 최초로 만들어진 우량계이다.

 

 

 

-수   표-

수표는 세종 23년에서 세종 24년에 걸처 제작.

서울 청계천과 한강에 설치된 하천수위 축정계이다.

현 세종대왕 기념관 소장되어 있으며 보물 제838호이다.

 

 

 

-자격루-

조선 세종 16년에 장영실 등이 제작한 물시계로서 우리나라에는 처음으로 저절로 움직여

시간을 알려주는 장치를 부착한 것이다.

현 덕수궁에 보존 국보 제229호이다.

 

 

 

-풍기대-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측정하여 기상을 위하여 바람깃발 즉 풍기를 세운 풍향기의 대 이다.

이풍기대는 세종시대의 전통을 이어받아 18세기에 만든 보물 제846호이다

현 창경궁에 소재에 보존 되어있슴.

 

 

 

이제 발명의 산실을 넘어 세종 영릉으로 입도를 합니다

훈민문 우측을 통하여 발걸음을 옮겨 갑니다.

 

 

 

 

 

 

들어서자 좌측의 연못는 커다란 잉어들이 엄청 반기고 있었습니다.

 

 

 

 

 

연못과 소나무의 조화가 잘 어우러져 있습니다

 

 

 

 

 

 

 

 

 

 

 

-홍살문-

신성한곳을 알리는 붉은색을 칠한 나무 문으로 홍전문 홍문 이라고도 합다.

화살 모양의 살대는 법도의 곧고 바름을 의미하여 나라의 위엄을 상징한다.

능역의 들머리에는 홍살문이 서있고 제관들을 찾을때 절을 하는 판위가 조성되어 있다.

홍살문에 도착한 제관은 판위에 절을 하고 정자각에 이르는데 홍살문과 정자각을

연결하던 돌길을 참도(참례하러 가는 길)라 하며 가운데 높은 길은 신도라 불러

돌아가신 선왕의 혼령만이 신도로 출입할수 있을 뿐이다.

 

 

 

-금천교-

능 앞에 흐르는 개울을 높이 일컬어 어구 또는 금천이라하고 여기에 놓인 다리를 금천교라 한다.

 

 

 

 

 

-정자각-

제례때 제물을 진설(차림)하고 제례를 드리던 집이다.

 

 

 

 

-수복방-

제기를 보관 하거나 수릉관(능을 지키는 관리) 또는 수복(청소하는 일을 맡아보던 일종의 관노비)이 거처하던 곳이다.

 

 

 

 

-영릉비-

세종대왕은 원래 헌릉 (지금의 내곡동) 서쪽 산줄기에 있었는데 예종원년(1469)에 이곳으로 천장 하였으며 왕비 소헌왕후가 합장 되어 있다

영릉비는 세종대완과 소헌왕후의 약력 그리고영릉을 옮긴 사실을 기록한 비석으로 영조 21년(1745)에 세웠고 비각도 이때 건조 되었다.

비문에는 "조선국 세종대왕 여릉 소헌왕후 부좌"라고새겨

왕비가 대왕의 왼편에 묻혔슴을 기록하고 있다.

 

 

 

 

 

 

 

 

 

 

 

 

영릉 비각의 모습 입니다

 

 

 

 

 

 

 

 

 

 

 

 

영릉 오른쪽의 모습 입니다

 

 

 

 

영릉 왼쪽의 모습 입니다.

 

 

 

 

 

 

재실 전경 입니다

홍살문밖. 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새워. 재관이 머물며 제례를 준비하던 집이다.

국장후 탈상 때까지 대군등 자손과 문무백관이 매년 제례에 참여 하였는데 이때

제례를 준비 하던 집이다.

 

 

 

 

 

세종전의 전경 입니다

이세종전의 내부에는 많은 자료들이 있었으나

본인은 내부를 탐방 하지 않았습니다 아쉬운을 뒤로한체

다음 목적지 효종의 영릉으로 발길을 옮겨 갑니다.

 

 

설명에 도움이 되셨습니까

우리나라를 길이 빛낸 세종 대왕의 업적을 살펴 보았습니다.

 

 

함께하여 주신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