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국립 현충원 고이잠든 친구를 만나다

2018. 6. 8. 10:33어디로갈까/축제·공원·테마

서울 동작동 국립 현충원


봄의 전령사들이 이 땅위에 움을 띄어주었던 짧은 날들이, 이제 그 뒤를 이어받는 계절 지천에 꽃을 피우고 녹음이 짙어가는 5월이다.

내 마음 그곳을 따라 발길을 옮기는 힘은 지축을 흔들어 대는 느낌으로 빠른 걸음을 재촉해 본다.


우리는 5월 13일 휴일을 맞아 시골촌넘들이 모여 등산을 하는 날로 지정되어 있어, 목적지를 선정함에 그 누구도 반대의견없이 국립 현충원으로 동의했다.

6월 6일 현충일을 맞아 그곳에 청년의 삶을 다하지 못한체 고이 잠들어 있는 친구가 있어서 이기 때문이다.


1978년 최 전방에서 근무중 순직한 한 친구와 막걸리 한잔을 하기 위함 이었기에, 더욱 뜻깊은 시간으로의 순간을 만들기 위해서다.

모두는 동작역에서 만나 서로의 안부와 악수로 마주하였다.


호국영령들이 잠들어있는 그곳

조국을 위해 숭고한 생명을 던진 분들에게 단체로 묵념을 올리는것을 필두로 현충원을 두루 들리고 친구도 만난다.

현충원 입구를 들어서면서



현충문 전경



현충탑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신 분으로서 민족의 성역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진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충의와 위훈을 총체적으로 상징하는 탑이다. 탑의 내부에는 6,25전쟁 당시 전사자 중 유해를 찾지 못한 10만 4천여 위의 호국용사를 위패로 모시고 있고, 탑내 중앙에 위치한 영현승천상 아래 지하 봉안실에는, 유해는 찾았으나 개인별 신원 확인이 불가능한 약 7천여 용사들의 영현을 봉안하고 있다.

탑의 왼쪽 동상은 애국투사상이며 오른쩍 동상은 호국영웅상이다. 이곳에 오시는 분은 단정한 차림과 경건한 마음으로 참배 하셔야 한다.



학고의용군 무명용사탑

조국이 6,25전쟁으로 위기에 처하자 각지에서 수많은 어린 학생들이 학도의용군으로 지진 참여하여 군,경과 함꼐 용감하게 싸우다 각 전선에서 장열하게 전사 하였다. 그 중 경상북도 포항지구 전투에서 산화하여 가매장 되었다가 발굴된 이름을 알 수 없는 학도의용군 유골 48위를 1964년 4월 이곳 국립현충원에 안장하게 되었다. 이 탑은 국립현충원 창설 당시 현재의 형충탑을 새로 건립하게 됨에 따라 이 자리로 옮겼으며, 묘역에 안장되어 있던 학도의용군 무명용사 48위의 유골을 이 탑 뒤에 합동 봉안 히였다. 그 후 이탑을 '학도의용군 무명용사탑' 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송이의 꽃에서 각 분야별 호국영령들을 표식하고 있는듯한 표현을 하고 있다.



호국영령과 함께하는 노송들



현충원 속에서도 아름다운 드라마틱한 모습들도 연출되고 있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묘역 숭고한 생명들이 이곳에 잠들다.









우리 고향 동창생의 묘지

육순이 넘어 만나는 의미는 더욱 깊다. 함께하지 못한 세월이 40여년이 훌쩍 지난 아쉬움은 그 무엇에도 대답을 할 수 가 없다.




인제에서 순직 하였다는 표식



오래전 추억속을 더듬어보며 화식이가 어떤 아이였는지로 속깊은 이야가 주제였다.

모두 묵념 및 업드려 줄을 올리는 친구도 있었다. 고이 잠든 화식아 함꼐 만나는 그날까지 라는 말의 표현이 이어지기도 한다.



이승만 전대통령 묘역에도 참배하게 되었다.



박정희 전대통령 묘역도 참배



참배객들의 묵념



박정희 전대통령을 운구한 차량이 전시되어 있다.







서달산


현충원에서 사달산으로







현충원에서 참배후 간략한 간식 이자리에서도 고이잠든 친구 이야기로....



서달산 서울둘레길 돌다가 각자 준비한 간식을 취식한다.



둘레길을 내려와 자리잡은 명태촌

오늘의 일정은 여기서 마지막을 고하고 각자 거처로 돌아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