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국보 제63호 보물 제223호 도피안사(到彼岸寺)

2018. 2. 23. 10:28문화재를찾아서/사찰·성지

도피안사(到彼岸寺)


건립시기:865년 고대/삼국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관우리 450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神興寺)의 말사이다. 865년(경문왕 5)에 도선(道詵)이 향도(香徒) 1,000명과 함께 이 절을 창건하고 삼층석탑과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을 봉안하였다.

『유점사본말사지(楡岾寺本末寺誌)』에 수록되어 있는 사적기에 의하면, 도선이 철조비로자나불상을 조성하여 철원의 안양사(安養寺)에 봉안하려고 하였으나, 운반 도중에 불상이 없어져서 찾았더니 도피안사 자리에 안좌하고 있었으므로 절을 창건하고 불상을 모셨다고 한다.

도선은 이 절을 800의 비보국찰(裨補國刹) 중의 하나로 삼았으며, 화개산이 마치 연꽃이 물에 떠 있는 연약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석탑과 철불로 산세의 약점을 보완하여 국가의 내실을 굳게 다지고 외세의 침략에 대비하였다고 한다.

오래도록 국가의 비보사찰로 명맥을 이어오다가 1898년 봄에 큰 화재로 전소된 뒤 주지 월운(月運)이 강대용(姜大容)의 도움을 받아 법당을 짓고 불상을 봉안하였으며, 승료(僧寮)와 누헌(樓軒) 등을 중수하였다.

6·25 때 소실된 뒤 주지 김상기(金相基)가 중건하였으며, 1959년에는 15사단 장병들이 법당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법당과 요사채가 있으며, 문화재로는 창건 당시 조성된 국보 제63호인 철조비로자나불좌상과 보물 제223호인 삼층석탑이 있다.[글:한국민족대백과]


도피안사는 강원(철원) 애국단 결성지 이다.

기독교,목사, 승려, 유학자 등 가담하여 독립을 위한 민족의 산실을 보여주었던 곳이었다.



2월 22일 강원도 철원군의 도피안사를 찾는길에는 힌눈으로 마중을 하고 있다.

6,25전란시 북측의 지역이기도 했던 사찰의 유래와 불교의 보물을 탐방하기 위함 이었다.

날씨가 풀려가던 것과는 달리 강원도를 들어서니 매서운 바람과 눈이 내리기 시작 한다.


도피안사 일주문



일주문 옆 소나무아래 있는 도피안사 표지석



안내판



세부 안내도



사천왕문



사천왕문에서 본 전경



겨울 연지모습



연지앞의 햇살비치는 곳에는 이미 봄기운이 보인다.




보호수

수종:느티나무 수령:600년 수고:22m 나무둘레:3m



느티나무기 하절기에는 모름지기 도피안사를 휘 덮을것만같은 생각이 든다.



철원 도피안사 삼층석탑 (鐵原 到彼岸寺 三層石塔)


보물 제223호


도피안사 법당 앞에 세워져 있는 탑으로,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은 그 구조가 특이해서 보통 4각의 돌을 이용하는데 비해 여기에서는 8각 모양의 돌로 높게 2단을 쌓았다. 아래층 기단의 8면에는 안상(眼象)이 조각되어 있다. 이 기단의 맨 윗돌에는 윗층 기단을 괴기 위한 높직한 8각의 괴임돌이 놓여져 있는데, 이곳에는 연꽃무늬의 조각이 새겨져 있다. 윗층 기단은 매우 높으나 각 면에 꾸밈이 없다. 다만, 기단의 맨윗돌 아랫면에 다소 두툼한 느낌의 연꽃무늬를 조각하여 둘러 놓았다. 탑신과 닿는 곳에는 높은 3단의 받침을 두어 1층 몸돌을 괴도록 하였는데, 이러한 기단의 꾸밈새는 석탑의 기법이라기보다는 불상의 기단 기법으로 보이며, 덮개돌 윗면의 높은 괴임형식은 9세기 통일신라의 석탑에서 볼 수 있는 특이한 수법이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에 각각 하나의 돌을 사용하였다. 각 층의 몸돌은 모서리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새겼을 뿐 다른 장식은 없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1층은 4단, 2·3층은 3단인데, 조각이 얕아서 다소 무거워 보이긴 하나, 네 귀퉁이가 한껏 위로 들려 있어 아름다운 모습이다.
기단의 꾸밈새에서 보이는 특이한 양식, 지붕돌 받침이 4단, 3단으로 일정치 않은 점 등이 통일신라에서 고려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모습임을 보여준다. 탑을 만든 시기는 법당 안에 모셔진 불상에 기록된 내용을 통해, 통일신라 경문왕 5년(865) 절을 건립할 당시 불상과 함께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글:문화재청]



대적광전 좌측으로 보이는곳은 천불전 이다.




대적광전의 처마선



3층석탑, 설법전, 종각



종각



범종






거센바람에 흔들려 울려 퍼지는 핑경소리는 고뇌를 털어내는 신비의 소리와 더불어 한결 가벼워지는 마음 이었다.



삼성각



철원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鐵原 到彼岸寺 鐵造毘盧遮那佛坐像)


국보 제63호


강원도 철원군 화개산에 자리잡은 도피안사는 신라 경문왕 5년(865)에 도선대사가 창건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도선대사가 철조비로자나불을 만들어 철원의 안양사(安養寺)에 모시려고 했으나 운반 도중에 불상이 없어져서 찾아보니 도피안사 자리에 앉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에 절을 세우고 불상을 모셨다고 한다.
신라말에서 고려초에는 철로 만든 불상이 크게 유행했는데, 이 작품은 그 대표적인 예로, 불상을 받치고 있는 대좌(臺座)까지도 철로 만든 보기 드문 작품이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갸름한 얼굴은 인자하고 온화한 인상이다. 평판적인 신체에는 굴곡의 표현이 없고, 양 어깨를 감싼 옷에는 평행한 옷주름이 형식적으로 표현되었다.
몸에 비해 가냘픈 손은 가슴 앞에서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는 모양으로 비로자나불이 취하는 일반적인 손모양이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는 이 시기에 가장 유행한 형태로, 상대와 하대에는 연꽃무늬를 새겼으며 중대는 8각을 이루고 있다.
불상 뒷면에 신라 경문왕 5년(865)에 만들었다는 내용의 글이 남아 있어서 만든 연대를 확실하게 알 수 있다. 통일신라 후기에 유행하던 철조비로자나불상의 새로운 양식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능숙한 조형수법과 알맞은 신체 비례를 보여주는 뛰어난 작품이다.[글:문화재청]

[사진출처:문화재청]


통일기원 지장보살









설법전 옆으로 놓여진 장독대



3층석탑과 무설전



눈 내리는 도피안사



산수유는 긴 겨울을 이겨내고 있다.



수국 생명력을 잃은지 오래지만 이렇게도 긴 겨울울 이겨 내며 뭇 사람들의 마음을 담아 주고 있다.


도피안사의 겨울 모습과 보물을 통한 탐방은 역사의 그윽한 향기를 만들어내는 시간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