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보덕암(보덕굴)의 역고드름

2018. 2. 27. 15:51문화재를찾아서/사찰·성지


제천 월악산 보덕암 보덕굴의 역고듬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후청골길 225[수산리 1060]

보덕암은 수안보에서 충주댐을 달리는 36번 국도를 따라 충주호의 낭만을 즐기며 달리다보면 수산교를 넌널수 있는 삼거리에서 우회전 하여 전형적인 시골 마을을 지나게된다. 이마을 지척에는 제천 옛날마을 켐핑장이 있기도 하다. 마을을 지나 차량 한대가 다닐수 있는 비좁은 도로이긴 하지만, 농사를 짓는 농부에게는 소중한 도로 이다. 일반 농작물에서 부터 유실수 까지 수확의 행복을 엊는 곳이다.

비좁은 비탈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넓적한  한곳에 보덕암 주차장과 공용 화장실이 나타난다. 이곳에는 보덕암에 오는분들과 영봉을 오르는 등산객들의 주차가 용이한 곳이기도 하다. 보덕암은 국립공원 명산 월악산 하봉, 중봉, 영봉바로 밑이라 보면 된다. 방향으로는 하봉의 서쪽 자락이다.

영봉을 등반하는 모든분들의 출발지는 송계계곡쪽의 유명관광지에서 출발점이 대다수 이나,

진정 하봉, 중봉, 영봉을 즐길줄 아는 분들 이라면 이곳 보덕암을 통한 등반을 시작 한다고 한다.


보덕암 보덕굴의 역고드름 모습



주차장에 주차후 오르막길의 콘크리트 포장길을 따라 오르면 보덕암을 만날수 있다.

월악산의 기암들로 즐기는 감탄이 많다고는 들었지만 이곳에서 부터 풍겨지는 암들의 유형이 남달리 보여진다.

나무들 또한 오래된 고목들이 반겨주는 기분은 이루말 할 수 없는 반전이 일어나기도 한다.



보덕암을 다 오르면 제일먼저 보이는 대웅전이 마주 보인다.

대웅전 앞에는 흔히 볼수있는 석탑이 아니라 나즈막하게 다른 모양새를 지니고 있는 탑이 보인다. 이탑은 봉래 있었던 전탑이 소실되어 보덕암 주위에 흩어져 있던 있던 부재들을 모아 미완성 전탑을 세우게 된것이라고 한다.


그러면 보덕암의 유래를 향토문화대전을 통하여 알아 보기로 한다.

보덕암(寶德庵)의 연원은 신라 시대 왕리조사(王利祖師)가 수행한 보덕굴에서 비롯한다. 왕리조사가 수행한 곳에 1918년 보덕암을 축조하였다고 전하며, 지금의 사찰은 1979년 무허가 사찰이 헐린 후에 조성된 것이라 한다. 보덕암은 관음도량이며, 왕리조사가 수행하였던 곳에서 연유하였다고 하여 왕리사(王利寺)라고도 한다. 현재의 보덕암은 주지가 1984년 입산한 이래 천일기도하면서 1986년에 자연스럽게 지금의 가람을 증축하였다.




기암 층벽 위에 있던 고탑 3기는 멸실되어 그 행방을 알 수 없다. 다만 대웅전(大雄殿)을 신축하면서 절터에 흩어져 있는 약 150매의 정방형과 장방형 전탑 부재가 수습하여, 항아리에 사찰 연기를 넣은 다음 미완성 전탑을 축조하여 대웅전 뜰에 세웠다. 사찰에 있었던 신령각과 칠성각(七星閣)은 삼성각(三聖閣)으로 대체하였다.

대웅전 뜰에서 동측으로 목조석가여래좌상을 봉안한 보덕선원(普德禪院)[정면 5칸, 측면 1칸]을 배치하여 참선도량으로 조성하였으며, 서측의 보덕암[정면 5칸, 측면 1칸]은 승려가 참선하면서 다실로 사용하고 있다. 대웅전에서 동쪽에 위치한 삼성각(三聖閣)[1칸]에는 칠성신, 독성신, 산신의 탱화를 봉안하였으며, 그 위쪽 산자락에는 1995년에 안치한 약사여래불입상이 서쪽을 향하고 있다.





한편, 보덕암은 옛날에 부유한 사람이 고질병으로 병환이 위독하자 가마를 타고 지금의 경내에 와서 약수를 마시고 완쾌한 곳으로 전한다. 이처럼 중생의 병환을 쾌유시키는 암자로 정평이 나면서 약수터 위에 약사여래불입상을 안치하게 되었다고 한다. [글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보덕암에서 보는 조망권



보덕암을 오르면서 우측으로 홀로 서있는 소나무는 마치 왕따를 당한듯 홀연히 자리를 지키며 모진 눈바람을 맞으며 꿋꿋히 서 있다.

멀리는 충주호의 전경도 바라볼수 있는 시간 공허함도 달래줄듯 하다. 필자가 올라왔던 반대쪽의 송계계곡 한수면 방향의 조망권에도 힐링이 이어진다.

2월의 끝자락 이었지만 등어리에는 살짝 땀이나는 현상을 시원함으로 위로를 받는 느낌은 상상을 초월하는 감탄으로 대신한다.

놀이나는 새들이 가장 멀리 본다는 말도 있듯이, 등산을 통한 고지의 점령이 무엇일까? 라는 정답은 아주 가까이서 느껴 보았다.



2월의 끝자락에서 만나는 약동하는 봄, 땅에는 서서히 햇볕아래 녹아내리는 사토속의 얼음이 물기를 내뿜고 있다.

그 물기는 바로 신발의 창에 진흙으로 법벅을 하게 만들고, 무거운 다리의 고통은 잠시 있으나. 시야에 들어오는 온갖 사물들이 손을 흔들고 반겨주는 모습에.

금방 언제 그랬느냐는 항변은 있을수가 없다.



보덕암에서 잠시 머뭇거리는 시간이 주어진다.

역고드럼은 어디에 있나? 주위를 두리번 거리다 박스종이위에 쒸어진글. 보덕굴 방향 이라는 글씨와 화살표가 그려져 있는것을 발견한다.

마침 암자에는 아무도 계시지 않았다. 우측편으로 두개의 개집이 있었고 그 개는 호피를 가진 귀한 종자의 개였다. 잠시 짖어대더니 멈추고, 화살표가 그려진 방향으로 전진한다. 대웅전 뒤쪽의 기암이 있는 바로뒤편으로 이동 하라는 지시나 다름없었던였다,

다른 탐방객들도 기암너머에 여러분이 있었다. 그곳을 내려가다보니 또 다른 안내판을 본다. 본 안내간판에 표기된 내용은 모감주 나무 군락지 였던 것이다.

동절기에는 잎이 없서 무심코 지나칠수 있을것 같다.

먼저 탐방객분들께 보덕굴이 어디에 있습니까? 라고 질문을 드리니 여기에서 100m남짓 이라고 말씀을 해 주시네요. 감사 합니다.


제천 복평리 모감주 나무 군락에 대해서 알아 볼까요?

충청북도 기념물 제155호

마의태자가 왕리조사가 되어 불교로 귀의하면서 보덕굴 인근에서 70여주의 모감주나무가 자생하고 있으며, 가슴높이 나무 지름은 6~18cm 둘레는 30~70cm  나무의 높이는 6~10m 정도이며, 수령은 30~100년 정도로 추정할 수 있다.

천연기념물 및 지방 기념물로 지정된 모감주나무 군락지는 대부분 해안가에서 자생하고 있는데 이곳은 내륙지방의 산림지역에 군락으로 서식하고 있어 타 지역의 모감주나무 군락지여과 비교할 때 특이한 사례라 볼 수 있으며, 충북 강원 지역에서 군락으로 자생하고 있는 지역이 발견된 사례는 드믈다고 볼 수 있다.


보덕굴의 입구와 종이 보인다.




보덕굴내의 역고드름

정말 땅에서 솟아 오른듯한 역고들의 신비를 느껴 본다. 고대산 고그름의 형태적인 것과는 조금의 차이점이 보이기도 한다.

2월의 끝자락이라서인지 추위가 누그러진 과정에서 이미 땅이 녹아 무너지는 경우도 다반사 발생하고 있는 모습이다.

1월 뉴스를 접하고 바로 볼수 있는 기회를 만들려고 했으나 차일피일 미루어진 현재 시간이 늦었을 새라 꼭 사진으로 남겨야 겠다는 생각은 멀어지지는 않았던 날 이었다.

역고드름의 절정기는 짐작해 보건대 올해의 유난스런 한파가 지속적일때가 다장 신비스러움을 자랑 할 때라고 생각해 본다.

겨울이면 무작정 이루어진디는 생각에는 부정을 말하고 싶다. 다만 시기적으로는 어림 잡을수 없다는 것으로 판단해보고 싶다.


각가지 모양새로 만드러진 역고드름을 보는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내년에는 더욱 신비로움을 담아 보고 싶다는 생각이 깊어 진다.











사계에서 보는 여러모습들을

내년에는 더욱 신비로움을.....

자연이 주는 행복 서로 만끽 하는 시간 만들어 보겠습니다.

여러분 모두 환절기에 건강 유의 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