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천연 기념물. 강화 사기리 탱자나무(江華 砂器里 탱자나무)

2018. 1. 7. 20:58어디로갈까/명승·천연기념물




강화 사기리 탱자나무(江華 砂器里 탱자나무)


천연기념물 제79호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사기리 135-10


천연기념물 제79호. 높이 3.8m, 뿌리 근처의 지름 53㎝인 노거수로서 나이는 400년으로 추정하나 확실하지 않다. 가지는 동쪽으로 4m, 남쪽으로 2.7m, 북쪽으로 3.9m 정도 퍼져 있다.

서쪽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을 막아주지 못하여 많은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몇 차례 외과수술을 하였다. 썩은 부분을 완전히 제거하고 쇠약해진 곳을 보강하였으나 수관(樹冠: 나무의 줄기 위에 있어 많은 가지가 달려 있는 부분)의 무게를 지탱할 수 없어서 서쪽 가지는 완전히 죽고 동쪽가지는 지주로써 지탱하고 있다. 뿌리 근처에서 돋아난 맹아(萌芽: 식물의 새로 트는 싹)가 자라기 시작하여 다시 곧추 크고 있다.

강화도는 고려 고종이 몽고의 침공을 피하여 천도한 곳으로, 조선시대 인조도 병자호란 때 가족과 함께 난을 피한 장소이다. 그 뒤 이를 계기로 성을 튼튼히 하고자 성밖에는 탱자나무를 울타리로 심어서 적병이 쉽사리 침범하지 못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나라에서는 탱자나무를 심을 종자를 보내주고 그 생육상태를 보고받아서 이 나무의 이용지역을 조사하였다고 한다. 이곳의 탱자나무도 그 때의 것이 살아남은 것으로 생각된다. 탱자나무는 경기도 이남에서 자라는 낙엽관목으로 강화도가 생육의 북쪽 한계선이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겨울날의 탱자나무 울타리는 참새들의 천국이다. 매가 하늘에 떠 있어도 참새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이리저리 가시가 뻗어 있어서 막대기 하나 들어갈 틈이 없어도 참새들은 순식간에 들어가 버릴 수 있어서다.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에서 최 참판 댁의 설명을 보면 “사랑 뒤뜰을 둘러친 것은 야트막한 탱자나무 울타리다. 울타리 건너편은 대숲이었고, 대숲을 등지고 있는 기와집에 안팎일을 다 맡고 있는 김 서방 내외가 살고 있었는데······”라고 했다. 이렇듯 우리 주변에서 만나는 탱자나무는 대부분 울타리 역할을 하고 있다.[이하글 참조;우리나무세계1]



탱자나무의 가장 비극적인 쓰임은 위리안치(圍籬安置)다. 이는 옛날 죄인을 귀양 보내 주거지를 제한하는 형벌로서 집 주위에 탱자나무를 빙 둘러 심어 바깥출입을 못하게 한 것을 말한다. 길게는 이렇게 수십 년을 보냈으니 애꿎은 탱자나무만 원망하지 않았나 싶다.



천연기념물 제79호 강화사기리 탱자나무 비석



탱자나무는 중국 양쯔강 상류가 원산지라고 알려져 있으며, 키 2~4미터 정도의 자그마한 나무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중부 이남에서 울타리로 널리 심었다. 탱자나무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가시나무의 대표 나무다. 손가락 두 마디 정도 되는 날카로운 가시가 가지마다 빈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달려 있다. 약간 모가 난 초록색 줄기는 길고 튼튼하며, 험상궂게 생긴 가시가 쉽게 접근을 거부하는 듯 제법 위엄을 갖추고 있다. 가지의 색깔이 초록이라 갈잎나무임에도 불구하고 잎이 진 겨울에도 얼핏 늘푸른나무처럼 보인다. 그러나 늦봄에 피는 새하얀 꽃은 향기가 그만이고, 가을에 열리는 동그랗고 노란 탱자열매는 험상궂은 외모와는 달리 친근하게 우리 곁에 있다. 먹을거리가 부족하던 시절의 어린아이들은 먹음직하게 생긴 탱자열매에 군침을 삼켰다. 지독한 신맛에 얼굴을 찡그려 가면서도 한두 개는 먹어치웠다. 잎은 세 개씩 같이 붙어 있는 겹잎이며, 잎자루에는 작은 날개가 붙어 있다.


탱자나무는 흔한 쓰임의 울타리 이외에, 국토방위의 최전선에서 활약하던 나라지킴이 나무였다. 옛날에는 성을 쌓고 주위에 ‘해자(垓字)’라 하여 둘러가면서 못을 파고 그도 모자라 성 밑에 탱자나무를 심었다. 특별한 장비를 갖추지 않으면 탱자나무 가시를 뚫고 성벽을 기어오르는 일이 녹녹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성을 탱자성이란 뜻으로 ‘지성(枳城)’이라 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지성은 충남 서산의 해미읍성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보면 “성 밖은 탱자나무 숲(枳林)으로 둘러싸여 있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강화도에 있는 천연기념물 78호와 79호로 지정된 탱자나무 역시 외적을 막기 위해 심었다.




중국의 고전인 안자춘추(晏子春秋) 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제나라 재상 안영이 초나라의 왕을 만나러 갔을 때 안영의 기를 꺾기 위해 제나라의 도둑을 잡아놓고는 “당신의 나라 사람들은 도둑질을 하는 버릇이 있는 모양이다” 하고 비아냥거렸다. 이에 안영은 귤나무는 회수(淮水) 남쪽에 심으면 귤이 열리지만, 회수 북쪽에 심으면 탱자가 열린다고 합니다(橘化爲枳). 저 사람도 초나라에 살았기 때문에 도둑이 됐을 것입니다  하고 응수했다. 이 이야기는 사람은 주변 환경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동의보감" 에 보면 탱자열매는 피부병, 열매껍질은 기침, 뿌리껍질은 치질, 줄기껍질은 종기와 풍증을 치료하는 귀중한 약재로 쓰였다. 나무 자체는 별로 쓰임새가 없을 것 같으나 북채를 만드는 나무로 탱자나무를 최고로 친다. 소리꾼은 탱자나무 북채로 박(拍)과 박 사이를 치고 들어가면서 북통을 ‘따악!’ 하고 칠 때 울려 퍼지는 소리에서 희열을 맛본다고 한다. 제주도 등지에서는 귤나무를 접붙이는 밑나무로 쓴다.[출처글:우리나무 세계1]






봄,여름,가을의 탱자나무

400년이 넘은 세월에도 꿋꿋이 버퉈온 탱자나무 후대의 만 사람들에게 감탄을 자아내게하는 역사속의 탱자나무

흔히 울타리용으로 심어진 탱자나무는 흔하게 보아왔었다.

강화의 탱자나무는 국방을 지키기 위한 방어용으로 심어졌다는 사실 이다.

왜세의 침입이 많았던 사실을 그대로 표현되고 있었다.


탱자열매를 맞 보셨나요

즙으로 한방울을  맛보게 되면 신맛을 좋아하는 분이 아니라면 사시나무떨듯 온몸이 흔들리게 되죠!

저도 어릴적 탱자나무 열매의 맛을 보고 팔짝팔짝 뛰었던 기억이 새록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