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병인.신미양요의 격전지 광성보

2017. 10. 31. 16:13문화재를찾아서/성·산성·돈대

-광성보-


광성보는 1658년 효종 9년에 설치한 해안수비 진지의 하나다.

신미양요 1871년 미국군대와 사투를벌인 격전지의 현장이다.

예하 화도돈대.오두돈대가 광성돈대 소속 이었다고 한다.



광성돈대에서 순국한 어재연 장군 동상이 건립되어 있다.






광성돈대 내부전경



소나무 숲길을 따라 걸어본다



쌍충비각

1871년 신미양요때 광성보전투에서 순절한 중군 어재연 외 59명의 순절비이다.

고종때부터 제사를 지내왔는데. 1973년 부터는 어재연의 후순들이 제사를 올려 충절의 유업을 추모하고 있다고한다.



신미 순의총


조선 고종8년에 신미양요 광성보 일대에서 미해군과 격전을 벌이다 전사한 무명 용사들의 무덤이다.

전사자들 중에서 어재연. 어재순 형제는 충북 음성군 대소면 성본리에 안장하고.

남은 군졸 51인은 신원을 알수 없어 7기의 분묘에 합장하여 이곳에 안장 하였다.


광성보 전투에서 조선군은 한명까지도 포로가. 되기를 거부하며

비겁하게 물러서지 않았으니. 외세의 침략에 대항하여 나라를 지키려했던

우리 민족의 호국 정신을 잘 보여주는 곳이다.




단풍길































용두돈대

강화해협을 지컸던 천연요새로서 손돌목돈대에 속해있는 외곽 초소겸 포대이다.

고종 8년 포대가 설치

1977년 강화 전적지 정화보수사업을 하면서 용두돈대로 명칭

병인.신미양요때 치열한 포격전이 벌어젔던 현장이다.

1977년 성벽을 복원하면서 강화 전적지 정화사업 기념비를 세웠다.







용두돈대 전경



기념비



김포 덕진진을 통하여 볼수 있는

손돌의 무덤이 저기 강화해협 건너 있는데...

손돌은 임금의 의심으로 핀닌길 강화도 도착 배의 안내잘못으로

임금의 명령으로 죽임을 당하나 후일 임금이 손돌의 죽임을 안타까워했다.



외곽포대가 별도로 설치 되어 있다.









광성보 주차장의 감나무

전년도에는 주렁주렁달린 감이

올해는 시기적으로 이미 모두 떨어진 상태.



해는져서 어두워지는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