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주실마을 지훈문학관

2017. 11. 10. 10:46어디로갈까/박물·문학·미술관

주실마을 지훈문학관


조지훈의 주실마을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에 속하는 주실마을은 북쪽으로 일월산이 있고, 서쪽에는 청기면, 동쪽은 수비면, 남쪽은 영양읍과 맞닿아 있다. 조지훈이 태어난 주실마을은 전통마을이면서도 실학자들과의 교류와 개화 개혁으로 이어진 진취적인 문화를 간직한 매우 유서 깊은 마을이기도 하다. 주실마을에는 조지훈 시인의 생가인 호은종택(壺隱宗宅.경상북도 기념물 제78호)이 마을 한복판에 널찍이 자리잡고 있고, 옥천종택(玉川宗宅:경상북도 민속자료 제42호),월록서당 등 숱한 문화자원들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Daum백과] 영양 주실마을 –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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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 일월산 자락을 휘도는  918번 도로를 따라가다보면 우측으로 울창한 가로수를 막 지나다 보면 주실마을 이란 이정표가 보인다.

나즈막한 다리를 건너 바라보이는 주실마을 여느 부락이나 다름없이 보이지만 웅장한 기와지붕과 넓적한 건축물이 보인다.

바로 지훈문학관 이다.




지훈 문학관 표지석



청록파 신인으로 누구나 학창시절 조지훈 시인의 시를 배웠을 것이다.

직접 문학관 내부에서 전시된 이력 및 작품을 다시금 복습 할 수 있는 기회는 뒤로 미루면 안될것 같다.



그럼 내부로 한번 들어가 본다.

조지훈(趙芝薰)

민족의 정서를 노래한 청록파 시인 조지훈(본명 동탁) 은 엄격한 가풍 속에서 한학을 배웠고 독학으로 혜화전문학교를 마쳤다. 1939년 「고풍의상」「승무」, 40년 「봉황수」로 「문장」지의 추천을 받아 문단에 데뷔했다

청록파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며 전통적 생활에 깃든 미의식을 노래했다. 본관은 한양. 본명은 동탁(東卓).8·15해방 직후 국회의원을 지낸 아버지 헌영과 전주이씨(全州李氏)인 어머니 사이의 4남매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맏형 동진(東振)은 요절했으나 〈세림시집〉을 펴낸 시인이었다.어려서 할아버지에게 한문을 배운 뒤, 3년간 영양보통학교를 다녔다. 서울로 올라와 1939년 혜화전문학교(지금의 동국대학교) 문과에 입학해 〈백지〉 동인으로 참여했고, 조연현 등과 친하게 지냈다. 1941년 대학을 졸업하고 일제의 탄압을 피해 오대산 월정사에서 불교전문강원 강사로 있었고, 이때 〈금강경오가해 金剛經五家解〉·〈화엄경〉 등의 불교서적과 노장사상, 당시를 즐겨 읽었다. 1942년 조선어학회 〈큰사전〉 편찬위원으로 참여했고,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검거되어 신문을 받았다. 이듬해 고향으로 내려가 지내다 8·15해방이 되자 다시 서울로 와서 명륜전문학교·경기여자고등학교에서 강의했다.

1946년 전국문필가협회 중앙위원 및 조선청년문학가협회 고전문학부장을 역임했고, 1947년 동국대학교 강사를 거쳐 고려대학교 교수가 되었다. 6·25전쟁 때는 문총구국대 기획위원장으로 중부전선에서 종군했고, 1961년 벨기에에서 열린 국제시인회의에 한국대표로 참가했다. 1963년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초대 소장이 되면서 시쓰기보다 〈한국문화사대계〉를 기획하고 추진하는 데 힘썼다. 그뒤 1965년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편찬위원, 1966년 민족문화추진위원회 편집위원, 1968년 한국시인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1968년 토혈로 사망하여 경기도 양주군 마석리에 안장되었고, 1972년 서울 남산에 시비가 세워졌다.[출처 다음백과]




[Daum백과] 조지훈 – 다음백과,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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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실마을 전경

* 조지훈 생가

시인이며 국문학자인 조지훈(1920∼1968) 선생이 태어난 곳이다.
조지훈은 경상북도 영양 출신으로 본명은 동탁(東卓)이다. 선생은 박목월·박두진과 공동으로 간행한 청록집의 시편들에서 주로 민족사의 맥락과 고전미 세계에 대한 찬양과 선(禪)세계를 노래하였는데, 유교 도덕주의의 격조높은 자연 인식을 보인다는 점에서 시문학사적 의의가 있다고 평가 받고 있다.
가옥은 몸체와 관리사로 나뉘어 있으며 몸체는 앞면 7칸·옆면 7칸 규모에 ㅁ자형 평면을 갖추고 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의 팔작지붕으로 꾸몄고, 전형적인 영남 북부지방 양반가의 풍모를 지니고 있다. 대문과 중문에는 태극기를 조각하여 채색한 것을 끼워두었고 집 주위는 고풍스러운 담을 둘렀다.
이 집은 이 지방 주택의 전형적인 양식으로 조선 중기 인조(재위 1623∼1649) 때에 조정형이 지었으며 한국전쟁 당시 일부 불탄 것을 1963년 복구하였다.
이곳은 조지훈 선생 외에 한말의 의병장이었던 조승기 선생과 선생의 조부인 조인석 선생 등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한 분들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출처 대한민국구석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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