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성읍 민속촌(마을)

2016. 7. 20. 20:06어디로갈까/축제·공원·테마




성읍민속마을의 역사

성읍민속마을은 조선조 태종 10년(1410년) 성산읍 고성리에 설치되었던 정의현청이 조선조 세종 5년(1423년) 이곳으로 옮겨진 이래

500여 년간 현청 소재지였던 유서 깊은 마을이다..

 

기록에 의하면 원래 정의현은 태종 16년(1416년) 안무사 오식의 건의에 따라 성산읍 고성리에 정의종을 축성 하였었으나, 현청이 동쪽에

너무 치우쳐 행정상 불편할 뿐만 아니라 태풍의 피해가 잦고 또한 우도가 가까이 있어 외적으로 부터의 침입이 빈번하였으므로

안무사 전관이 건의하여 세종 5년(1423년), 당시 진사리(현 표선면 성읍리)로 현치를 옮기게 되었다 한다. 따라서 일명 진사성이라고도

불리었던 정의성은 축성을 시작한지 5일 만인 세종 5년 정월 13일에 총 둘레 2,986척, 높이 13척의 규모로 완공되었는데

성에는 동서남으로 세 개의 문을 두었고 성안에는 두 곳의 우물이 있었다.

 

숙종 28년(1702년) 이형상 목사의 「탐라순력도」에 의하면 정의현의 당시 민가 호수가 1436호, 전답이 140결, 성수비군이 664명,

말 1,178필, 흑우 228수를 보유할 정도의 상당히 번성하였던 읍성이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1423년 이후부터는 약 5세기 동안 정의현의

도읍지로 번성하였던 성읍은 평범한 농촌마을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러다가 다시 1915년 5월 1일부로 제주군제도 마저 폐지되고 도제가

실시되면서 정의고을이었던 성읍은 표선면 면소재지로 전락하게 되었다. (지금의 표선면은 1935년 동중면이 개칭된 이름이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성읍민속마을은 그 역사적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하며 문화재적 차원에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

그리하여 제주도 지정 민속자료 제 5호로 지정되었고, 이어 1984년 6월 총 1,425필지 3,191,711㎡의 면적이 중요민속자료 188호

국가지정문화제로 승격되었으며, 1987년 9월에는 보호구역이 935호 국가지정문화제로 승격되었으며, 1987년 9월에는 보호구역이

935필지(790,747㎡)로 축소 조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출처:성읍마을]

드라마 대장금 촬영지로 유명세가 널리 알려저 있군요









성음 민속촌 가가호호 대문 입죠!

현재 모습은 사람이 있다는 표식이구요

삼단의 나무가 모두 수평으로 걸려 있다면 사람이 외출이아 없다는 뜻이랍니다.














성읍 민속촌 해설자님 고마더군요

방언을 사용 하기도 하구요. 지금은 제주 똥돼지 대하여 설명을 현실성으로 설명을 해 주시고 계시네요

해설자님이 서계신 저곳에서 용변을 보면 돼지가 와서 먹는다는 제스처를 보여주고 계시네요.


중앙부 저곳에서 용변을 보게 되는거죠!



돼지 우리가 이렇게 생겼구요















오미자 숙성과정을 설명 해 주시네요






제주는 비가올때면 지푸라기를 통해 항아리로 빗물을 유도하여 저장을 하곤 한답니다.


















제주성읍리 느티나무 및 팽나무군

  • 지정번호천연기념물 제 161호
  • 지정년월일1964년 1월 31일
  • 소재지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881-2번지 외 3필지

 

옛 도읍지였던(1423~1914년) 표선면 성읍리 일관헌 주변에 있는 느티나무 한 그루와 팽나무 세 그루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되고 있다.

고려 충렬왕 때에는 이곳에 매우 울창한 숲이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지금은 불과 몇 그루 밖에 남지 않았다.

현재 느티나무는 키가 30m, 가슴높이의 둘레가 5m에 이르러 나무의 나이를 약 1,000년 정도로 보고 있으며, 팽나무는 키가 24m~32m, 가슴높이의 줄기둘레는 2.4~4.5m에 이르고 있어 나무의 나이는 약 600년 정도로 보고 있다.

 

성읍 느티나무. 팽나무

 









성읍마을을 휘돌아 민속마을의 설명을 잘 듣고 다음 장소로 옮길 채비를 합니다.